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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라

현대 독일문학의 거장인 프란츠 카프카는 부유한 유대계 상인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공장을 경영해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유대인 전통에 집착하는 인물이었다. 친족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을 아버지로 둔 프란츠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온실 속의 화초였다. 그런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를 잘 알고 있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고, 아들이 자신처럼 독립적이고 강인한 정신력을 갖추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천성이 예술가였던 프란츠의 예민한 감수성은 아버지의 존재를 고통으로 받아들였다. 어린 프란츠의 일기에는 부성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부친의 간섭을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광포한 권력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업가인 헤르만은 문학에 소질이 있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아들을 반강제로 프라하 대학 법학부에 집어넣은 것도 헤르만이었다. 헤르만은 언제나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제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쓰고 있는 아들을 이해하려고도, 대화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한창 젊은 나이다, 내가 무엇을 얘기해줘도 저 아이는 자기 생각이 정당하다고 고집을 부릴 게 뻔하다, 문학이 다 뭐란 말인가, 언젠가 내 나이가 되면 그때 이 아버지가 얼마나 현명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부자간의 장벽이 점점 높아지는 사이 프란츠는 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코자 법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겉으로 보기엔 더없이 평화로운 가정이었다. 부유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준 젊은 아들. 그 아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노동자재해보험국의 법률담당 관리로 임용되었고, 헤르만은 자신의 판단과 결단이 옳았다고 자부했다. 프라하의 유대인 사회는 그들 부자를 가정교육의 정답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헤르만은 끝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프란츠의 인생에서 아버지는 거대한 장벽이었다는 점이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아들이 꿈꾸는 의지와 세계를 짓밟고 무너뜨리는 장애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행동한 프란츠의 마음속엔 근원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었으며, 그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을 순순히 아버지 손에 내던져버린 약하디 약한 자아에 대한 불신이었다.

프란츠는 세 번 약혼했으나 모두 파혼 당했고, 내성적이며 비사교적인 인물이 되어 고독한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련과 갈등이 그의 문학적 재능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가 하루아침에 인간에서 거대한 곤충으로 변해버린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은 자기 의지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작가 본인의 상처받은 내면이었다.

그의 40 평생은 불만과 분노와 자기학대의 반복이었다. 빈 교외의 카를링 요양소에서 쓸쓸히 죽어간 프란츠는 어느 날 아버지 헤르만에게 편지를 보낸다.

'
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저 역시 아버지께 의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의지한다는 건 아버지의 노력을 빼앗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이런 제 생각이 그토록 무서운 계획이었을까요. 물론 저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아버지의 신뢰와 사랑과 기대 역시 시끄러운 소동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만나는 첫 번째 세계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 어떤 세계에 소속되어 있다는 존재감을 처음 깨닫는다. 만일 그 세계가 나의 자녀에게 좌절을 안긴다면, 자녀는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모든 세계에 불만과 불평으로 다가서게 될 지도 모른다. 부모가 보여주는 일상 속에서 자녀는 자신이 살아가게 될 세상의 원리를 배우기 때문이다.


자녀를 양육하고 바르게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이 많다. 교육을 경쟁으로 여기며 다른 집 부모들과 치열하게 투쟁하려는 의욕을 보여주는 경우도 적잖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특별한 무언가를 자녀에게 가르치고 보태주기 전에, 부모는 자녀가 마음껏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라는 세계 속에서 자녀 스스로 인생을 깨닫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라는 울타리는 자녀가 자신과 세상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고 배워나가는 두 번 다시 없을 찬스다.


안타깝게도 요즘 들어 그 울타리가 비루해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낡고 허물어져 스스로 울타리를 포기해버리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에 해외유학 보내줬다고 가르침을 다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결혼시켜 번듯한 아파트 한 채 마련해주었다고 부모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혼자 뿌듯하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직장 다니는 애들 부부를 대신해 손주 돌봐주며 이 나이 먹도록 자식새끼한테 얽매여 내 인생은 살아보지도 못하는구나, 애석함을 희생으로 가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자녀가 원하는 것은 부모의 희생도, 경제적 보호도, 보모 역할도 아니다. 병들어 큰 돈 나가지 않게 건강히 오래 살아주시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고 당당하게 그 결과에 승복하며 인생의 주권을 행사하는 인간다움을 그리워하고 있다.


부모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자녀들이 인정할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 천지에 대통령만 존경받고 나라를 구한 영웅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흙에 바쳐 땅에 심은 곡식을 키워내는 데 도가 튼 시골 촌부의 농사에 대한 자긍심은 세상 모두가 존경할만하다.


부모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나의 참모습이 자녀 앞에 드러나는 시기로 지금처럼 적절할 때가 또 있을까. 아이들은 장성했고, 그 아이들은 세상의 주체가 되어 삶의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에 맞물려 나는 뒷전으로 물러나 저물어간다. 아이들 앞에서 한창 때의 권위를 세울 수도 없고, 말 한마디에 가족들이 추풍낙엽처럼 벌벌 떠는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내 가족, 내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될 내 모습이 지금의 내 얼굴인 것이다. 그 모습이 아이들 뇌리에 실망으로, 분노로, 조롱거리로 남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먼 훗날 우리 아버지 앞으로 아파트가 몇 채나 되었지, 경기도 어디에 땅이 있었지, 우리 어머니는 몇 살까지 살다 가셨지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부모님은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었고, 어떤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상대하셨으며, 가시는 날까지 그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부모라는 직책이 아닌 사람으로서 아이들 가슴 속에 남게 되기를 꿈꿔본다.

출처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http://retirement.miraeasset.com)



 
“자네 그 나이에 아직도 일해?”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걸 어떡해?”라고 대답하는 사람. 환갑이 넘어 전재산을 날리고 남의 집 무덤 관리하는 묘막살이로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기를 꿈꾸었던 사람. 바로 올해 한국나이로 여든 다섯인 1930년생 말띠 ‘김욱’ 선생이다. 유명한 작가이며 번역가이기도 한 김욱 선생은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계 최일선에서 30여 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퇴직 후에는 10여 년간 한국생산성본부 출판기획위원으로 일하면서 기획, 집필, 번역일을 담당하고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은 치열한 삶을 살면서 ‘폭주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폭주노년',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나이듦의 지혜',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 '당당하게 늙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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