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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생명의 고리

시청자 여러분 가정에도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며...
 

"어머나! 이 신비로운 열매가 뭔가요?”
해 밝은 창가에 영롱한 보라색으로 조록조록 늘어진 열매를 보면 모두들 신기해했다. 화초를 좋아하는 남편의 정성으로 탐스럽게 열린 이 열매는 야생으로 모질게 자란 것과는 달리 수정처럼 윤기가 흐르는 좀작살나무 열매다. 이 나무와 인연이 된 건 3년 전, 가까운 공원에 산책갔다가 말라죽은 나뭇가지를 꺾어와 옥상 화분에 고추 모종 지지대로 꽂아주면서였다.


그 후 옥상에는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 간들거리던 고추 모종이 마른 가지를 버팀목 삼아 뿌리를 내렸다. 거름을 주고 정성껏 물을 준 덕분에 각종 채소는 너울너울 풍요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부르기에 올라가 보았더니 그 말라 죽은 줄 알았던 좀작살나무 가지에서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는 게 아닌가? 잎은 곧 여러 개의 줄기가 되어 뻗었고 솜털 같은 연분홍 꽃을 피우더니 벌들이 잉잉거렸다. 추석 무렵이 되자 그 좀작살나무는 어느새 보라빛 구슬을 조롱조롱 매달고 우아한 맵시를 뽐냈다.


서리가 내릴 무렵 고춧대를 뽑아 갈무리하고 좀작살나무는 얼어 죽을까봐 해 밝은 복도로 들여왔다. 이미 잎은 다 떨어지고 열매만 남아 마치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여인처럼 애련해 보이는데, 어쩌면『어린 왕자』의 별나라 장미꽃도 이렇듯 특별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 후 동지 무렵, 남편이 문득 속이 쓰리다 하여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청천벽력으로 ‘위암 3기 말’이란 판정을 받았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고 모든 질서가 깨져 허둥거리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수술을 받고 1주일 만에 퇴원하여 통근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다.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에 좀작살나무는 싹이 나기를 기다려도 열매가 잔뜩 매달려서인지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자 남편의 해쓱한 얼굴처럼 좀작살나무 열매들도 허옇게 퇴색을 하더니 하나둘 힘없이 떨어졌다.


남편의 병세는 암이 림프로 전이되어 암 덩이가 손에 잡힐 정도로 악화되었다. 위암은 조기 발견만 하면 생존율이 가장 높다는데, 평생을 술 담배도 안 하고 스포츠로 단련한 남편은 늘 오만하게,
"우리 어머니는 평생 병원 한 번도 안 가시고 백수를 누리셨는데. 난 어머니를 꼭 빼닮았으니 병원은 필요 없어요."
하며 만용을 부리다가 너무 늦게 발견되어 낭패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건강을 장담하던 남편은 자신의 무지가 창피했는지 지인들의 병문안도 꺼렸다. 그래서 유일한 친구는 TV와 화초뿐이었다.


그럭저럭 2년이 지나고 병원에선 '더이상 우리나라 의학으로는 길이 없다' 하여 마지막 수단으로 표적치료를 신청했는데, 다행히 미국에서 개발한 신약이 연결되어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남편은 ‘마루타 신세’라며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 와중에 다가온 지난 설날 아침, 노총각 아들의 세배를 받으며 비감해진 남편은 유언처럼
“내가 죽기 전에 오로지 너 결혼하는 것만 보아도 여한이 없겠다만….”
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도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남편의 표적치료는 2개월 동안 투약을 한 뒤 검사를 하는 연속과정이었다. 그 무렵 공무원인 아들은 업무가 바빠서 주말에나 함께 식사를 했는데, 개나리꽃이 화사하던 어느 봄날 식탁 머리에서 아들이 예고 없는 특종 뉴스를 발표했다.
"아버지 저 결혼할게요, 그런데 좀 빨리해야겠어요. 실은 전부터 사귀던 친구가 있어서 프로포즈하고 함께 여행도 다녀왔는데, 아~ 참~ (머리를 긁적이며) 어느새 이 녀석이 자꾸 재촉하네요.”
하며 주머니에서 5주가 되었다는 초음파 아기 사진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 순간 남편의 얼굴엔 함박꽃보다 더 환한 광배가 피어났고 회한과 감격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오! 잘했다 잘했어, 참으로 고맙구나, 내 아들아!”
남편은 아들의 손을 덥석 잡아 감싸 안았다. 그 후,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추진하여 눈부신 계절의 여왕 5월의 신부를 맞게 되었다. 날마다 신바람이 난 남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옥상의 채소들과 화분관리를 더 열심히 했는데, 어느 날 말라죽은 좀작살나무 밑에서 또 새순이 솟았다고 흥분을 했다. 뿌리에서 돋았는지 아니면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일곱 포기나 솟았다며 행운의 숫자라고 더 기뻐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사실 그동안 남편은 미국에서 개발한 신약이 적중하여 ‘기적적으로 암 덩이가 계속 줄어든다.’는 의사의 낙관적인 소견을 들었다. 이 모두가 만삭이 된 복덩이 며느리 덕분이라 여겨져 우리는 시간이 나면 며느리와 맛집 순례를 다니며 날마다 잔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녕 대자연의 오묘한 섭리와 생명의 고리는 그 얼마나 끈질기고 위대하며 신비로운가? 참으로 하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사랑으로 정성껏 키우는 것은 가장 신성한 삶의 도리이며 감사라 여겨진다. 
 

높푸른 하늘 아래 삼라만상이 고운 옷을 입고 축제를 펼치던 날, 우리 집에는 베토벤의 영웅교향곡보다 더 우렁찬 새 생명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나는 한 땀 한 땀 생명의 고리를 엮듯 기도를 수놓아 아가의 배내옷과 포대기를 지었다. 그리고 요즘은 옹알이하며 방긋거리는 천사의 미소에 취해 진정한 축복을 음미하며 새해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실버넷뉴스 정정자 기자 jcj6376@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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