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문화행복

미래·경제

복지·환경

국제

시민·사회

생활건강

영상뉴스

사진뉴스

특별취재

SNN칼럼

오피니언

오늘의 건강

여행 & 맛

포토에세이

생활 한자

지구촌산책

한국의 기차역

인물과 역사

디카교실

자연과 야생화

시사 상식

복지관소식

실버넷 만평

전국의 아름다운 길

은퇴 후 자산관리

외국어

기타

확대 l 축소

동포여, 조국 독립 위해 목숨을 바치자!

- 독립운동가 손현주 선생 -

우리가 할 일을 아니 하고 남의 힘으로 독립을 이룰 수 없다.

손현주 선생(사진)은 1890년대 후반 관립 영어학교를 졸업하고 1903년 경 하와이로 이주했다. 1906년경 미국 본토로 건너가 로녹대학(Roanode College)에서 수학하던 선생은 19076월 헤이그 특사의 통역 임무를 맡아 5개월간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나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이후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에서 학위를 마친 뒤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한인중앙위원과 한인어학원에서 한인 인재양성에 힘썼다.

한편, 19191 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해 8월 구미위원회(歐美委員會)를 설치했는데, 선생은 위원으로 선임되어 하와이에서 애국공채를 발행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며 임시정부의 재정을 후원했다.

1930년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세력 통합 움직임이 일어나자 이에 함께하여 북미 대한인국민회를 재건했다.

또한, 193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하여 미주 한인사회의 부흥과 항일운동, 그리고 임시정부의 재정 후원을 위해 힘썼다.

1941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주 내 모든 단체를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조직되자 집행부 위원으로 임시정부의 후원과 외교, 선전 사업을 추진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연합국회의에 참석한 임시정부대표단. 1945년 5월 22일 자료:독립기념관

한편, 재미한족연합회 집행부가 미국 육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 캘리포니아주 민병대 소속으로 맹호군(猛虎軍)이라 불리는 한인국방경위대(韓人國防警衛隊)를 편성하자 정위(正尉)로 자원해 군사훈련을 받으며 대일항전을 준비했다

주미외교위원부 위원과 유엔연합국회의 임시정부 대표단 위원으로 활동하며, 광복을 맞이한 선생은 196580세를 일기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독립기념관은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사진 등 관련 자료를 7월 한 달 동안 독립기념관에서 전시한다고 밝혔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주제로 삼행시 짓기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매월 말까지 삼행시를 지어준 응모자 가운데 5명에게 독립기념관에서 상품을 보내준다. 즐거운 이벤트와 함께 애국선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실버넷뉴스 전달구 기자 dkchun@silvernetnews.com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