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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으로 초지일관한 항일(抗日) 군인

- 영원한 이준식(李俊植) 독립운동가 -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이준식(李俊植·1900년 2월 18일~1966년 4월 5일)의 공훈을 기리고자 제56관 통로 별도의 야외 특별 기획전시 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9월 한 달 동안 전시에 들어갔다.

선생은 191931운동 직후 독립전쟁에 투신하고자 중국으로 건너갔다. 1921년 중국 곤명(昆明)에 있는 운남강무학교(雲南講武學校)를 졸업하고 만주로 이동해 항일독립군 연합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했다.

만주지역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선생은 192411월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자 중앙위원과 군사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28년에는 만주지역 3부가 통합해 조직된 국민부(國民府)의 군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
12월 국민부를 지원하기 위한 민족유일당으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이 조직되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및 산하 무력단체인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도 활약했다
.

1930년대 만주지역에서의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지자 상해로 이동, 중국군에서 복무하며 항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기념 전례식 기념사진. 1940년 중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찍은 기념사진(1940년 9월). 선생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자료: 독립기념관 제공).

투쟁을 지속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장사 광주 등지로 이전하게 되자 임시정부 청사 확보에 노력했다.

1939
년에는 임시정부 군사위원회 화북지구 특파단으로 서안에 파견되어 병사모집과 군사훈련의 임무를 수행했다

19409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창설 당시 선생은 총사령부 참모에 임명되었고, 11월에는 한국광복군 제1 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42
년 임시정부 의정원 비서장을 겸직하였으며 1943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중앙집행위원에도 선출되었다.

정부는 초지일관 항일 군인으로 활약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실버넷뉴스 전달구 기자 dkchun@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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