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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무장투쟁 개척자 蔡相德

- 서간도지역에서 독립의군부 13도 총대표로 활동 -

남매에게 채상덕 독립운동가 이야길 설명하고 있다.

"교육은 어릴 때 제대로 해야 성인이 되어서 바른길을 걸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휴일에 먼저 독립기념관을 찾았어요. 제4관을 나와 특별전시장에서 채상덕 독립 운동가에 대한 소상한 내력을 알게 됐습니다.

스승 최익현
(崔益鉉)을 찾아가서 의병을 일으켜달라고 호소했다니 책에서 읽지 못했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경기도 성남에서 남매를 데리고 왔다는 관람자가 한 말이다.

독립기념관은 1일 독립운동가 채상덕(蔡相德·1862~1925)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제6관 통로에 야외 특별전시장을 마련해 10월 한 달 동안 전시에 들어갔다.

채상덕은 1862년 황해도에서 출생했다. 1906년 그의 스승 최익현(崔益鉉)이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충남의 곽한일(郭漢一이남규(李南珪) 등을 찾아가 호남과

참의부의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저격 사건 보도기사 '독립기념관 제공'

호서를 잇는 연합전선 구축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달라고 호소했다
.

1912년 고종황제는 임병찬(林炳贊)에게 비밀 칙서를 내려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도록 했다. 19133월 임병찬 등과 함께 13명의 총 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913년 5월 독립의군부는 일제에 한국 침략의 부당성을 일깨우는 서한과 국권반환 요구서를 보내는 거사를 계획했다. 거사 직전 일제에게 발각되어 독립의군부 지도부와 대원들은 대거 붙잡혔고, 채상덕은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망명했다.

19228월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했다. 부총장으로 선출되어 간도참변으로 파괴된 한인사회의 복구와 통의부 의용군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참의군 본부가 있었던 고마령 전경. '독립기념관 제공'

1923
년 초 대한통의부 사이에서 이념적 갈등이 발생하자, 복벽주 계열의 인사들과 대한의군부를 조직했다. 대한통의부 의용군이었던 채찬(蔡燦김원상(金元常) 등도 통의부에서 나와 육군주만참의부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을 따라 참의부로 옮겨간 인물들 대부분은 그의 제자와 부하들이었다.

19253월 일제가 참의부의 회의 장소를 기습 공격해, 참의부 대원 29명이 전사하는 고마령 참변이 발생했다.

소식을 들고 채상덕은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전달구 기자 dkchun@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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