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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에 물들은 애국자의 묘역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거룩한 님의 침묵 - -

주민 김용근 씨가, 성재 이시영 선생의 묘소 앞 동상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다며, 분노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북한산 자락에는 등산객의 행렬이 줄을 이었는데, 단풍나무처럼 알록달록한 옷차림으로 삼삼오오 팀을 이뤄 정담을 나누며 휴일을 맞은 민주성지의 등산로는 모처럼 북적였다.

이곳 수유리 산 중턱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수많은 민주인사의 묘역인데, 그중 성재 이시영(李始榮) 묘소 상석(床石)에 물 한 병을 담아 올려놓고 절을 하며 기도하는 김용근 (60) 씨는 예식이 끝난 후, 탐방객을 향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는 이시영 선생의 묘지 앞에 세어놓은 동상과 기록물을 몇 개월 전 누구인지 모르지만, 쇠파이프를 사용해 부서뜨렸다고 설명하며 격분했다. 동상의 목 부분이 부러져 사건 후 다시 목을 붙인 흔적이 있고 왼쪽 귀는 아직도 조각나 있다고 가리켰다.

- 묘지와 어떤 관련이 있으신지요.
개인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사는 집이 여기서 가까워서 매일 물을 올리고 그물로 상석을 깨끗하게 닦으며 주변 청소를 하고, 나라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 이시영 선생이 하셨던 일 중 어떤 부분을 특별히 기억하십니까.
선생은 나라를 위해 하시는 업적도 많지만, 국권 피탈 후 독립운동기지 건설 계획에 따라 6형제의 가재를 재원으로 삼고, 1910년 말 서간도로 50여 명의 가족을 거느리고 망명까지 해서 나라를 구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제헌국회에서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어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헌신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견제와 실정(失政)으로 뜻을 펴지 못했다.

인천에서 온 젊은 부부가 오랜만에 찾은 이준 열사묘비에서 기념하고 있다.

1951'거창 양민학살 사건''국민방위군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의 실정(失政)과 부패를 성토하는 '국민에게 고한다'라는 성명서를 국회에 전달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했다.

장례는 9일간의 국민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서울 정릉 묘소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수유리 현 묘소로 이장하였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한편, 이곳에서 조금 지나가면 이준 열사의 묘비가 있는데 가끔 방문객 모습이 보였다. 묘비기록문에는열사는 고종황제의 억울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장으로 향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본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격분한 열사는 현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라는 문구가 오가는 길손의 발길을 붙들었다.

이준 열사의 기록물이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있다. 

묘역에는 열사의 평소 의지가 담긴 글의 기록판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저마다 읽고도 모자라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에게 이름과 나이를 묻자 이름과 나이는 알아서 뭘 합니까. 우린 전부터 이준 열사의 묘지를 찾고 싶었으나 바쁜 생활 때문에 이제 오게 되어 죄송스럽고, 또 기쁘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딸 내외와 함께 왔다는 이강윤(68) 씨 부부는 묘지 앞에 우뚝 서 있는 특별한 나무를 빙빙 돌면서 ! 이상하다 어떻게 이런 나무가 있을 수가 있을까. 아마도 이준 열사의 곧은 절개처럼 영혼의 나무인가 보네하고 읊조리며, 한뿌리에 열 개의 가지로 쭉 뻗어 서 있는 나무를 두 사람이 팔을 모아 안아보고 묘비를 돌아보다 묘역을 나섰다.


문지영 기자 mun99056@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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