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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

- 노인의 삶(일: 움직임: 즐거움)은 여행의 끝이런가 -

 

 아침 신문을 보니, 무산 스님(대한불교조계종·대종사 주지)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하는 시조 적멸(寂滅)을 위하여에 이를 썼고 2018년 5월 26일 오후 511분 적멸(寂滅)을 향해 시의 세계로 건너갔다는 기사가 실렸다.

노년의 삶이란 글을 인터넷에 뒤지니, 뜬 위의 글은 근포 황우철 블로그에서 발견 인용했다. 이 글은 어느 날이란 무정 한의 시간 제목을 달고 있었다.

이러하듯 노년의 삶은 여느 젊은 삶과 다르지 않고 무정, 무한(無限)의 대로(大路)이다. 평생 즐거움은 일을 하며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늙노라면 더 일할 수 있는지를 가름하고 건강을 돌봐야 한다. 삭아져 가는 몸에 정신이 반짝거린다면 정신을 더 쓰고 쇠해가는 몸이더라도 건강하게 할 일을 찾아봄 직하다. 어쩌면 몸의 사용 여력이 여남은 삶의 즐거움이고 건강한 심신이 곧 일하게 한다.

일해야 산 사람이다. 그러나 마냥 할 일이 젊은 날처럼 버겁지 않아야 한다. 한편 노년이랍시고 안락함만 고수하는 건 진짜 노인 축이다. 살 힘이 있는 한 누구나 응당 일하고, 일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특히 노인은 일하지 않으면 정물처럼 되어버리고 시시때때로 고독해지고 허무해진다.

몸은 삭아져 가고 마음은 어디 두기도 궁색해져서 함부로 눈물도 인다. 이는 행불행으로 보기보다 노년을 인정할 일이다. 그걸 두고 자식을 부르고 의사에게 의탁하며 부산을 떨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서 움직임(일함)이 노인답다.

흐르는 물처럼 세월에 따라서 흐르다 보면 노년에 이른다. 늙는 걸 굳이 되돌리려 들면 역행이고 이탈과 이질감도 생긴다. 이왕이면 쭉 몰두할 일에 빠져 살아야 한다. 노중의 노인은 몸을 움직이는 직립 걷기부터이고 맘도 울타리를 넘나드는 콩 넝쿨처럼 이웃과 부담없이 넘나듦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죽음을 앞두고 절박해지는 심신(心身)을 순리(純理)로 조정할 일이다. 그러면서 책도 읽고 햇볕도 쐬고 살아온 걸 글로도 쓸 일도 있다. 또 지금은 백세 시대이다. 구순에 경로당을 차지했다면 육칠십은 당연히 일을 하며 즐길 시점이고 만사의 흐름이다.

운동과 취미와 재미에 걸맞은 할 일을 해야 한다. 손자들을 돌보고, 텃밭을 일구고, 하다 못해서 반려 생명에 정들이는 일이라도 한다면 이로써 얽힌 관계의 삶은 즐거움이다. 사람을 바라기로 하는 동식물도 있는데 반대로 사람도 그들을 바라기로 하며 정을 베풀고, 마음 주노라면 일함의 힘듦보다 그 즐거움은 배가된다.

내가 가꾼 장미는 특별나다라고 한 생떼 쥐 베리 작품 속의 여우 말처럼 화분에 꽃을 돌보고 텃밭도 가꾸며 정() 들인다면, 사람과 자연은 저절로 넘쳐날 즐거움이다. 우주에 걸림 없는 산소처럼 무상무임으로 내통하는 생의 즐거움은 수학 계산이나 제로섬으로 오는 게 아니다. 너풀너풀 잎이 자라고 꽃을 피우는 식물 하나라도 사람의 부지런한 발자국을 따라서 일어나는 데 하물며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사랑하기 나름이다.

몸은 늙더라도 결국 사람은 만사(萬事)를 결정한다. 그래서 책임(責任)도 생기고 절대 가볍지 않은 의무(義務)도 있다. 노년에 들어서 힘에 부치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생태(生態)에 어울려 살 일이다. 노년에 일한다는 자체가 익어가고 소멸해가는 삶의 즐거움이다.

뒤집어 생각해도 움직여야(: 노동(勞動)할 사람이다. 일하는 일상은 낙락(樂樂)거리고 일 안 하는노인은 핑계 무덤이다. 노년의 능력과 힘에 맞추노라면 할 일은 수두룩하다. 서두의 무산 스님처럼 명줄을 놓는 죽음도 삶의즐거움이라는데 일은 얼마나 생생한 즐거움인가.

나이나 돈으로 갑질하고, 또 겉치장으로 소일하면 사람의 삶이 우려된다. 노인에게 특히 일이란 늙어서 못한다는 생각이 많은데. 뒤돌아보면 젊어서도 힘들었다. 그 힘듦을 지나고 나서 꽃길처럼 추억하는 건 일의 진실 때문이다. 일의 진실은 사람으로 온 생명의 숨길처럼 조용한 일상과 내통한다.

스님은 선()시조를 개척하셨고 난해했던 선시 문턱을 허물고, 자신을 벌레로 낮춘 반성의 시학(詩學)으로 등단 50년을 맞아 작품 평론집도 발간했다. 참고로 적멸(寂滅)은 사라져 없어짐.” 이는 무산 스님의 행적이다.

어차피 적멸해 갈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외길인생이다. 약도 의사도 준비되어 있다지만, 태어나서 늙어가고 병들어 죽는 건 기정사실이다. 살아있음은 일함의 즐거움으로 명명백백하다. 복지 수당과 연금에만 목매는 것은 안일하고 편해 뵈지만, 스스로 일하면 더 떳떳하고 살맛까지도 더 난다.

정신영역도 사람만의 성역으로 살며 즐긴 일들로 곧 고운 문화이다.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가 낯선 이를 보고 느닷없이 우는 울음과 눈물과 낯익으면 이내 방실대고 미소 짓는 그 웃음은 그냥 사람의 몫이다. 살았기에 사람 짓 하는 신의 영역으로 어쩌면 무의식처럼 늘 성스러운 영역이다.

시대는 스마트 폰과 인터넷으로 정보는 차고 넘친다. 꼭 지식을 전수하지 않아도 되는 평준화된 세상이다, 이에 일하면서 누리다가 때(죽음)가 오면 자연으로 돌아가 적멸됨은 자연생태의 삶으로 우주는 늘 무궁하다.

어떻게 온 걸 논하지 말고 무얼 하며 사는 것을 어려워 마라는 한마음은 노년에 가질 참 용기로 무의식의 의식이다. 또 자연 생태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더 지향할 것은 즐겁게 죽을 매듭인 할 일을 가짐이다.

몸은 노쇠해져 태클에 걸리지만 노인이라서 안 된다는 시각에 당당해야 한다. ‘노인도 된다로 꺼지지 않는 만물 사랑을 말하고프다. 늙는 마음 서럽더라도 갈 길은 적멸(寂滅)이니, 일하다가(즐기다가) 갈 길을 갈 따름이다.


김임선 기자 sun4750@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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