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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진작가(이용권)를 만나다(1)

- 전쟁영웅 우표의 주인공 -

지난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포토스토리에서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용권(90) 자문위원을 조인원 기자와 함께 만났다. 연세보다 매우 건강해 보이는 이 자문위원은 밝은 표정으로 맞이해주었다.

- 고향이 어디인가요?

서울 서대문구 중림동으로 서울 토박이예요. 서울봉래초등학교 34회죠, 그땐 고등학교가 없었고, 5년제 중학교가 있었지요. 성동상업중학교를 졸업했어요.

이용권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이 지나온 세월을 말하고 있다.

- 군대는 언제 갔고, 어느 전투에 참전했으며 어떤 공을 세웠나요?

단국대학교 정치경제과에 들어갔는데 등록금을 내지 못해 쫓겨났어요. 갈 데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백골부대 마크를 보니, 멋있어 보기 좋았어요. 모병관이 서울 남대문 옆에 있었는데 중사예요, 내년(1950) 4월이면 징병이 된다는 거예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하고 군에 가기로 했어요. 헌병, 멋있잖아요. 그런데 헌병은 복무기간이 5년이래요, 장교로 가자, 장교는 7년이래요. 졸병은? 2년 반이래요. 그래서 졸병을 지원했지요.

5월 초하룻날 오래요. 닷새 후에 오면 다 같이 간대요. 그날에 갔더니, 수십 명이 모였어요. 다 서울 놈들이에요. 수원, 천안, 자꾸 남쪽으로 가더니 온양, 거기에 미군 부대가 있었어요. 천막 막사였어요. 거기서 군번을 받았어요. 대학에 못 가서 군에 갔어요. 고병(선배)들에게서 제식훈련, 집총훈련을 받았어요. 기초 훈련받고 있는데 8월에 황해도 옹진전투가 벌어졌어요. 그래서 우리가 공비토벌 나갔지요. 6·25사변 전에 502월 서울로 복귀했어요, 전후방 교대했어요. 4개월간 훈련받고 있다가 6·25가 났어요.

인민군이 장악한 김포공항을 점령, 탈환 전투에 참가했어요. B29기가 기총사격을 하여 격납고에 있던 20명의 인민군이 거의 다 죽고 몇 놈 살았는데 우리가 들어가 잔당을 확인사살 했지요. 2016628일에 여의도에서 표창장을 준다고 해서 갔어요. 무슨 상인지도 모르고 갔는데 커다란 액자에 내 사진이 들어간 우표를 넣어 주었어요. 1950628일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는 김포공항 탈환 작전에서 세운 공훈을 기려 전쟁영웅 우표를 보훈처장이 직접 주었어요. 우리 전주 이씨 의안대군 22대손인데 가문의 영광이지요.”

김포공항 탈환 작전에서 세운 공훈을 기려 전쟁영웅 우표를 만들어 보훈처장이 주었다.'본인 제공'

6·25사변, 3·8선을 돌파할 때, 10, ‘국군은 내 명령을 들어라. 내가 대통령이다. 내일 아침 5시에 3·8선을 돌파하라.’ 밴프리트 미8군 사령관이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안 가면 언제 가냐? 기회다. 이 기회에 가야 한다. 당신 가만히 있어, 우린 올라간다. 대통령 이 박사가 내일 아침에 돌파하라.’ 그 특명 받고 올라간 거예요. 이승만 박사의 배짱이에요.

함경도 청진 풍계리까지 갔어요. 인민군이 다 내려와서 없어요. 두만강이 보여요, ‘이젠 통일됐다고 했는데, 중공군 30만 명이 내려왔어요. 모택동이 중공군을 내려보내서 이것 때문에 통일이 안 됐어요. 중공군만 아녔으면 그때 통일됐는데 중공군 땜에 안 된 거예요.

- 요즘 젊은 군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불평불만 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히 하라.”



김의배 기자 saesaem@silvernetnews.com

조인원 기자 79photo@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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