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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건배 술잔을 거절한 장군 (2)

- 신앙의 선봉장(先鋒將) 나희필 장로가 그립다 -

나희필 장군은 평안남도 용강군 출신으로 육사 5기생이다. 그는 사병으로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 교도대 병사로 복무 중 육사에 입학했다. 군 재직 시 군 교회를 여러 곳에 세웠다. 가는 곳마다 신앙전력 강화에 매진했다.

나희필 장군이 제대 후 어느 날 밤 심야에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보부의 차장보 자리의 인선 문제로 며칠 밤을 지새우던 김재규 부장은 문득 나희필 장군이 생각나 새벽 두 시에 전화했다.

"나 장군이야말로 바로 이 자리에 앉을 가장 적임자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시오!" 당시 차장보 자리는 중앙정보부의 막대한 예산 집행에 관여하는 요직이기 때문에 청렴결백함이 요구되는 인물을 추천해야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수가 있었다.

김재규 부장의 보고를 받고 난 박정희 대통령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일국의 국가 원수가 친히 권하는 축하의 술잔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하는 믿음의 장군 나희필이야말로 그 어떤 압력도 부정도 유혹도 능히 거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잘 추천했어"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고 한다.

또한,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도 나희필 장군에 대한 칭찬을 자주 했다. 얼마 후 대통령은 나희필을 다시 장관급인 비상기획원 위원장 자리로 영전시켰다.

그런데 만일 이때 영전이 안 되었고 중앙정보부에 있었더라면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만찬 자리에 나희필은 김재규와 함께 꼭 참석했어야만 하는 확정적 인물이었다.

끝으로 박 대통령이 비명에 쓰러진 지 14년이 지난 1993년 9월 16일 위대한 신앙의 장군 나희필 장로는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시 새문안 교회 김동익 목사의 눈물 기도를 받는 자리에서 그는 오히려 목사를 위로하면서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잘 보필하지 못하고 먼저 떠납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목사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찬송가 455장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청초한 가을 백화처럼, 젖먹이가 어머니의 품 안에서 포근히 잠든 모습처럼 그는 허물 많은 이 세상을 미련 없이 하직하고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죽어도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는 자가 없으며 재앙이 닥치기 전에 내가 그를 데려가도 그 사실을 깨닫는 자가 아무도 없구나! 경건하게 사는 자들은 죽어도 평안과 안식을 얻는다. (이사야 57:1∼2)

술이 역사에 남긴 교훈이 많다. 영국의 대 정치가였던 WE 글래드스턴은 1809년 리버풀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831년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수상을 네 차례나 역임했다. 대영 제국의 수상을 네 번이나 할 수 있었던 그의 정치 배경에는 항상 술을 제1의 경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발명가 에디슨은 자신이 술에게 두뇌를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수많은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회고했다. 또한, F 로가우는 술자리에서의 우정은 그 술과 함께 하룻밤밖에 효용이 없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참하게 죽어간 궁정동 최후의 만찬장에는 그날도 변함없이 그가 즐겨 마셨던 독한 양주가 놓여 있었다. 만일 그날 박 대통령이 독주에 심하게 취하지만 않았더라도 권총은 감히 그의 머리에 접근을 못 했을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독주에 미혹된 자는 지혜가 없다고 했다.

역사에는 만일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마르크스가 그렇게도 원했던 1841년 독일의 본 대학 교수 자리만 얻었다면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도 하지 않았을 것이요 더 나아가 중국의 공산당도,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도, 삼팔선도, 6·25전쟁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적폐 청산(積幣淸算)과 무리한 과거사 내로남불 소모적 쟁점 갈등으로 자유경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이번 한일 경제, 안보 논란도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비롯되었다. 평화는 힘(국방력)이 있을 때 성취되는 것이지 감정, 감성적으론 허공의 메아리와 같다.

북한은 6‧25 남침 이후 지금까지 계속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삼대 세습 북한 정권은 공산주의 유훈 정치 집단으로 변할 수 없는 나라다. 이제는 핵보유국으로 위용을 과시하며 남한을 제치고 미국과 담판을 벌이고 있다. 한‧미‧일 대 중‧러‧북 간에 안보경제 전쟁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진퇴양난에 빠진 대한민국의 안보만은 무형전력인 정신교육 강화와 신앙무장 전력을 극대화하여 국민 안보 의식을 고취해야 할 때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우리나라의 주적은 어느 나라냐”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못 하고 얼버무렸다. 국방 안보 수장의 국가안보관이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믿음의 선봉장인 나희필 장군 같은 강직한 참군인의 리더십이 그립다. 3군사령부가 지금은 1‧3군이 통합하여 육군지상군작전사령부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부대 구호는 그대로 선봉(先鋒)이다.


최종세 기자 se2030@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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