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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나라 사랑의 본보기

- 간송 전형필의 나라와 조국 사랑 -

 나는 그림을 잘 그릴 줄은 몰라도 다른 사람이 그려 놓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좋아한다. 그리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미술관서울관 등은 물론 인사동과 사간동의 갤러리를  자주 찾기도 한다.
 
2004년 정년을 맞이하고 혜화동에서 과교총(과학교육단체 총연합회) 회장을 할 때 성북초등학교 정문 맞은편에 있는 ‘간송 미술관’을 종종 찾았다. 간송 미술관의 보화각은 전시장이 좁아서 1년에 5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 2주씩 소장품 전시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도자기뿐 아니라 옛날 그림과 글씨를 접할 기회를 얻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겸재 정선의 그림이 그곳에 있었고 청자와 백자 그리고 연적이 그곳에 있었다.

그 보화각의 수장고와 전시장이 좁아서 확장 수리하느라고 옛 동대문 운동장 터에 자리 잡은 DDP 건물 2층에서 5년째 연속하여 전시해 왔는데 이번에는 올해 1월 4일부터 3월 말까지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 특별전’이다.

대부분 사람은 돈을 벌어 억만장자가 될수록 장롱 깊숙이 넣어놓고 가치 있고 멋있게 쓸 줄을 모른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돈을 나라를 위하고 조국을 위한 것이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많은 돈을 쾌척하는 멋진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그가 바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이다. 간송은 일제 강점기 말 1935년 일본 골동품상으로부터 국보 제68호로서 고려청자의 대명사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을 2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그 당시 2만 원은 8칸짜리 기와집 20채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그는 돈이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가 보물이 일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 두려워 한 푼도 깎지 않고  즉석에서 현금으로 매병을 품에 안았다. 이 청자의 문양은 학과 구름을 주제로 시문(詩文)하였는데 이 운학문(雲鶴紋)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고대의 신선 사상과 관련이 있다. 

흑백으로 상감된 이중(二重) 무늬 원 안에는 지상에서 상공을 향해 날아가는 학을, 원 밖에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학을 배치하고 여백에는 영지버섯 모양의 구름을 가득 시문했다.
 
한때 일반 가정의 부엌에서 참기름 병으로 쓰이던 조선의 백자는 그 가치를 알게 된 일본 수집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귀중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1936년 처음 시작한 합법적 유물 반출구인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서 간송이 일본의 대수장가와 불꽃 튀기는 경합을 했다.

그 당시로써는 경매 최고가였던 1만 4580원을 지불하고 차지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은 국보 제294호로 지정되었다. 간송은 이같이 국보를 모으고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깃든 나라 사랑 문화예술 정신이 대한민국의 미래로 전해지기를 바랐던 그의 뜨거운 마음이 느껴진다.  

간송이 뛰어난 안목으로 수집한 고려청자 컬렉션으로 유명했던 당시 일본 주재 영국 변호사 ‘죤 갯스비’의 수집품을 동경까지 건너가 인수하게 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어느 날 간송은 갯스비가 일본을 떠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즉시 동경으로 향했다. 

처음 조선에 왔을 때 성북동의 보화각을 구경했던 갯스비는 젊은 수집가 간송 전형필이 예술작품을 사랑하는 열망에 감동하였다. 이러한 믿음을 품에 안은 간송이 일본으로 가서 그로부터 국보 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靑磁母子猿形硯滴)을 비롯해 20점의 고려청자를 한 번에 모두 샀다.

무식의 소치로 친일파 송병준의 집 아궁이에서 불쏘시개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했던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은 위기를 넘기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진경산수화를 정립한 겸재의 그림은 장엄하고 힘이 있다. 그림 그릴 때 그는 선담후농(先淡後濃)의 룰을 따르기 때문에 그림 자체가 세련되고 중후한 느낌을 준다.

즉 그림 그릴 때 먹색을 처음에 옅은 것에서 진한 것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을 여러 번 반복 할수록 그림의 내용은 무게가 있게 마련이다.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쓴 예서(隸書)체의 글씨는 최고 경지에 다다른다.

그 내용은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즉‘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와 오이 그리고 생강나물’이며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즉 ‘가장 멋진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그리고 손자’의 만남이라 했다.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 같은 애국자가 있었으며 지금은 나라를 지키는 대한민국 국군이 있어서 우리는 그들에게 무한한 믿음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번 DDP에서 열리는 간송 미술관의 ‘대한 컬렉션’을 보면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예술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품 안에 안으려는 간송 전형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는 애국정신이 투철한 예술품 애호가일 뿐 아니라 나라 사랑의 큰 물결을 지금도 우리에게 보내주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정완호 박사(수필가,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wanho-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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