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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난 못해’ ‘난 몰라’는 자랑이 아니다

글 김욱 작가

어렸을 적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들을 새삼 떠올려보자면 ‘누굴 닮아 저 모양일까’ ‘염춘교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네가 해야 될 일은 알아서 해라’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 나이까지 나를 따라다니는 엄마의 말씀은 ‘네가 해야 될 일은 알아서 해라’다.

어려서는 엄마가 옷을 입혀주고, 책가방을 대신 싸주는 게 당연했다. 당연했지만 엄마는 되도록 빨리 내가 자신이 해야 될 일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던 모양이다. 나는 육남매의 장남이었다.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어야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 말을 듣게 될 때마다 더럭 겁부터 나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자립의 중요성이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립이란 자율적인 정신에 의해 확립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장직에서 물러나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만년과 노년의 생활은 장년과 중년의 생활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서 자율적인 정신이 만들어진다.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상담역으로 만족해야 한다. 혹은 평범한 아버지로 돌아와야 한다. 사회적 위치에서 물러난 뒤에도 나의 인간적인 위치는 여전한 것이다. 비록 곁에서 도와주던 비서도 사라지고, 출장길에 나설 때처럼 회사에서 KTX 승차권이 알아서 척척 나오지도 않는다. 어디 가고 싶으면 직접 표를 예매하거나 아이들에게 사정사정해야 한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어느 후배는 삼십 년 넘게 아침마다 토스트로 끼니를 해결하던 친구였는데, 그 삼십 년 동안 제 손으로 빵과 우유를 사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평범한 인생, 인간적인 위치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가를 고민하지 않고 일에만 매달렸던 데서 비극이 시작된 셈이다.

계란을 스스로 사는 사람은 나쁜 짓을 할 리 없다...?

젊은 시절 신문기자로 일할 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의 부패스캔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부패의 주범으로 기업의 회장님이 거론되었다.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그의 무능과 탐욕을 탓하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 숟가락을 얹어 기사를 몇 개 쓰긴 했는데,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이 양반이 그런 부정부패를 저지를 만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퇴근길에 버스정류장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달걀 한 판을 사 가지고 다시 차에 오르는 걸 봤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달걀 한 판이다. 널리고 널린 직장인이 아닌 기업의 총수다. 달걀 따위를 자기 손으로 산다는 게 신기했다. 집에 달걀이 꼭 필요하다면 비서를 시켜도 된다. 그런데 퇴근길에 자기 돈으로 직접 달걀을 샀다. 이 분은 세상이 떠드는 것처럼 회사돈을 횡령할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다른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억울한 오해를 뒤집어쓰고 물러나게 되더라도 큰 상처 없이 자신의 생활을 성심껏 유지할 것이라는 신뢰가 생겼다.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인간적 위치를 자기 힘으로 꾸려나갈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둘러싼 부정부패 스캔들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사회에 공헌하시고 은퇴했다.

평범한 남자들, 왜 집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를까

회장님, 사장님 못지않게 각 가정의 남자들은 위치가 높다. 회장님처럼 어깨를 으쓱할 만한 공적은 없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며 장남이고, 오래된 가문의 일원이다. 그런 이유로 기본적인 생활마저 거부한다.

리모컨 건전지 하나 바꾸지 못한다. 건전지를 사려고도 하지 않는다. 찻잔을 닦는 법도 없고, 외출한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쌀도 씻어놓지 않는다. 밤에 이불도 깔지 않는다. 세탁기도 돌려본 적이 없다. 빨래를 널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걷어서 정리한 경험도 없다. 직접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부르지도 않는다. 욕실에 비누가 없으면 치약을 짜내 손바닥을 문지른다. 커피 한 잔 타달라고 가족을 들들 볶아댄다.

이런 남자들을 숱하게 목격했다. 내 친구들이었고, 후배였으며,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이기도 했다. 인간으로서의 독자적인 삶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학력이라든가 경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6, 70년대에는 툭하면 백열전구가 나갔다. 친구 중 한 명은 백열전구가 나갈 때마다 아내를 불러 전구를 갈아 끼우도록 시켰다. 아내가 밥상을 밟고 올라가 전구를 갈아 끼우는 동안 그는 회사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이 친구 직장은 ‘한국전력’이었다. 우리는 한전에서 전구 가는 법도 안 가르쳐주느냐며 그를 놀렸다. 사회적 지위, 능력, 가족을 생각하고 부하를 배려하는 마음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가 부장님으로, 회장님으로 불리는 동안에는 전구를 갈아 끼울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생활의 기본적인 부분에서 기능을 상실해버린다. 그리고 노후에 문제가 발생한다. 더 이상 회장님이 아니다. “달걀!”하고 외쳐도 누가 달걀 하나 먹으라고 갖다 주지 않는다. “전구!”라고 명령해도 늙은 아내는 더 이상 전구를 갈아 끼우지 못한다.

 


‘난 못해’ ‘난 몰라’는 자랑이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사람이 똑같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챙기는 사회를 말한다. 숙련이 필요한 작업에서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으니까, 아버지니까, 은퇴했으니까 해선 안 될 일 같은 건 없다. 또 나는 늙어서 몰라요, 라는 변명도 허용되지 않는다. 회장님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건 평범한 생활자로 복귀했다는 뜻이다. 밥하고, 청소하고 세탁하고, 장보는 방법을 익혀둬야 한다.

기름값이 아깝고 운전이 예전만 못하다면 아이들이 찾아올 때까지 방구석에서 우두커니 텔레비전만 보고 앉아있을 게 아니라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야 한다. 시내버스는 30분 안에 갈아타면 환승이라고 해서 돈을 더 받지 않는다. 내가 최근에 알아낸 방법이다.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궁리해야 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나이 먹고 이런 것도 할 줄 몰라 창피하다거나, 아이들하고 같이 살았으면 아이들이 다 해줬을 텐데 불평할 것이 아니라 몇 번의 실패를 통해 익숙해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난 못해’ ‘난 몰라’는 자랑이 아니다. 꽃 같은 젊은 처자들 입에서 ‘난 못해’ ‘난 몰라’라는 말이 나오면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다 늙은 입술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저 나이 먹고 이런 것도 못하는 게 자랑인가, 한심스러워진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우리 엄마가 자주 하셨던 말씀 중에 ‘일에도 순서가 있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요즘 같이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세상에서 ‘일에도 순서가 있다’고 하면 낡은 시대의 유물처럼 눈부터 찌푸리기 일쑤인데 인생은 정해진 순서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중요한 순서도 있고 사소한 순서도 있겠으나 어쨌든 순서가 없는 일은 없다. 뭔가를 만들고, 보관하고, 마련하고 옮기고 이룩하는 모든 과정에 순서가 있다.

글을 쓰는 데도 순서가 있고, 음식을 만드는 데에도 순서가 있다. 나이가 드는 데에도 순서가 있다. 그러므로 순서대로 행동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기본적인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다. 머리가 흐려지고, 기능이 쇠약해지면 순서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감정이 올라오는 대로 말해버린다. 한마디로 순서를 실천하는 인내와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절제가 안 되는 것이다.

순서를 무시함으로써 우리 생활은 낭패를 본다. 목욕물 온도를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샤워기를 틀었다가 화상을 입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일의 순서’를 남에게 의존하는 버릇이 생긴다. 어디 여행을 가도 직접 챙기는 게 없다. 친척 결혼식에도 아이들이나 아내가 알아서 축의금을 챙겨갈 것으로 믿어버린다. 은행 예금도 남들이 알아서 다 해준다고 자랑한다. 내 머리가 멍청해져서 남들에게 부탁한다고는 차마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 입장에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아서 편하다고 만족한다.

하지 못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자립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자율도 생각하지 못한다.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훈련을 무시했다가는 관절도, 뇌도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과 두뇌를 단련시키는 데 열심이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매순간이 위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http://retirement.miraeasset.com)

“자네 그 나이에 아직도 일해?”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걸 어떡해?”라고 대답하는 사람. 환갑이 넘어 전재산을 날리고 남의 집 무덤 관리하는 묘막살이로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기를 꿈꾸었던 사람. 바로 1930년생 말띠 ‘김욱’ 선생이다. 유명한 작가이며 번역가이기도 한 김욱 선생은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계 최일선에서 30여 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퇴직 후에는 10여 년간 한국생산성본부 출판기획위원으로 일하면서 기획, 집필, 번역일을 담당하고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은 치열한 삶을 살면서 ‘폭주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폭주노년',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나이듦의 지혜',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 '당당하게 늙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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