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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노인네가 아름답다

글 김욱 작가

몇 년 전 등장한 안티에이징(anti-aging)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곳은 성형외과나 피부과, 화장품 가게였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우리 생활 전반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말 그대로 늙음에 대한 인간의 저항이 극렬해진 때문이다. 안티에이징이 유행하면서 화장품 하나를 써도 주름개선이나 미백효과 같은 기능성이 첨가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건강보조식품은 수천 가지 종류를 헤아리고, 예전에는 허약한 사람들이나 먹는 걸로 인식되던 비타민 등의 영양제가 세끼 밥만큼이나 친숙해졌다.

안티에이징은 연령이라는 시간의 강요 앞에서 인간이 부당함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살아온 햇수가 아닌 내 몸의 상태, 내 피부 상태, 젊은 날에 못잖은 두 팔과 두 다리의 근력으로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여분을 판단해달라는 요구다.

의학이 발달하고 문명의 수준과 혜택이 늘어날수록 사람의 몸은 점점 더 건강해지고, 평균 수명 또한 매년 연장되고 있다. 성형의학 등의 기술이 좋아지면서 인력으로 외모를 가꾸고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전 사람들과 비교해봤을 때 현대의 우리들은 놀라우리만큼 젊어졌다. 불과 10년 전의 노년층과 지금의 노년층을 비교해보면 신체활동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젊고 건강하다.

노화에 대한 인간의 저항력은 앞으로도 계속 강력해질 게 분명하다. 100세 무병장수도 20년 후가 되면 꿈같은 이야기에서 벗어나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만년의 연속이다

그런데 우리가 노화에 저항하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는 동안 잊어버리고 돌보지 못한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죽음에 대한 대처다. 늙음에 대해서는 거부도 할 수 있고 저항도 할 수 있지만 죽음 앞에서는 순종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 죽음마저도 항상 늙음의 때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 죽는 게 당연한 듯 보여도 세상 사람 모두가 천수를 누리고 떠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의 40대만 해도 한창 일할 나이에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등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40대 남성 사망률이 세계에서 손꼽힌다는 뉴스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연 그들 중 몇 명이나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까? 과연 몇 명이나 오늘 하루를 내 인생의 만년이라 여기며 가꾸고 준비해왔을까?

우리들 삶에는 만년이라는 시기가 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듯 죽음 앞에 만년이라는 시기가 도래하는 것 또한 숙명이다.

이 만년이란 시기는 정하고 받아들이기가 매우 애매하다. 소년과 청년과 장년과 노년에 각각 시절이 있고 그에 해당하는 나이가 있지만 만년에는 그와 같이 정해놓은 특정한 때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40대 남성이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운동부족, 흡연, 음주 등으로 불치의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면 그의 삶에서 만년이라 부를 만한 시절은 30대 후반이 될 것이다.

10대의 어린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녀가 있다면 소녀의 삶에서 만년은 10대 이전, 즉 또래 아이들이 한창 세상을 배워나갈 유년시절이 소녀에겐 만년이 된다.

반대로 100세를 훌쩍 넘겨 장수하는 사람들에게 환갑과 고희는 인생의 반환점을 조금 넘겼을 뿐인 한 시기에 불과해진다. 이렇듯 만년은 모든 이의 삶에 공평하게 주어지는 통과의례인 동시에 모두가 같을 수는 없는 가장 개성적이고 특별한 시간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만년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만년이라고 하면 왠지 죽음이 연상되어 시한부 환자들에게나 국한된 것으로 여긴다.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년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만년이 연장되는 만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노화방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만년에 대한 준비가 아닐까?

나는 이 만년이라는 시기에 ‘미학’이라는 의미를 덧붙이고 싶다. 서양철학에서는 미학을 ‘에스테티카(Aesthetica)’라고 부른다. 해설을 덧붙이자면 ‘미적인 것을 추구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만년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궁극적으론 인생의 성찰이자, 계획이며 실천이 되겠다.

오늘 밤 눈을 감으면 당연히 내일의 아침 해가 창가를 비춘다는 감각으로 이제껏 하루를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내일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인생에 더해질 때가 된 것이다. 24시간이 이토록 길고, 소중하다는 것을, 또 그냥 지나쳐왔던 풍경들과 일상들과 사람들이 그처럼 귀하고 값지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억지로라도 그 순간들에 감동을 덧입히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안티에이징에서 안티로드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자. 여러 겹으로 포장된 인생이었다. 지난 수십여 년간의 인생여정은 나라는 인간을 겹겹이 둘러싸는 데 시간을 낭비한 데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삶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반대로 줄여야 될 때가 되었다. 재산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다. 쌓으면 쌓을수록 개인의 자유가 줄어든다. 과거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직함으로 불렸는지에 구애받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 세월이 남겨놓은 퇴적물에 파묻혀 썩어버린 음식물쓰레기처럼 냄새를 풍기게 된다.

마침내 젊음은 우리 곁을 떠났고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세상은 청춘을 구가하던 화려한 시절과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살아가야 할 날들은 숱하게 남아있다. 남은 시간들이 부담스럽다. 걱정스럽다. 약해빠진 자신을 세월 탓으로 면죄부를 덧씌우기 전에 되돌아봐야 한다. 왜 사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는가.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왜 두려워하게 되었는가.

더는 경쟁할 상대도, 모험할 일도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다. 내가 남았다. 나와의 경쟁이 남았으며, 자기로의 모험이 남아있으며, 더 다듬고 가꾸고 치장해야 될 나의 소중한 시절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가장 나답게 도전해야 될 스텝이 남아있는 것이다. 죽음에 닿는 그 순간까지 인간은 새로워야 되고, 변화되어야 하고,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만년의 미학, 인생의 미학이다.

한 번 더 이 운명을 개척해보겠노라, 다짐하는 각오가 자기 안에서 솟아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빈털터리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조건과 환경에 대한 집착을 땅바닥에 내팽개쳐야 한다. 버리고 또 버리는 것이다. 그럴수록 당신의 인생은 두툼해진다. 한 줌의 베이킹파우더가 밀가루 반죽을 부풀려 근사한 파티 케이크로 거듭나듯이 무모한 도전과 열망이 남들이 낡아빠졌다고 손가락질하는 우리의 만년을 가장 아름답게 변화시켜주는 것이다.

과거의 나 같은 건 발길로 힘껏 등짝을 차버려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남은 날들을 준비해야 한다.

보이는 나에게 충실했던 날들과는 작별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대한 고뇌에서 뒷방 늙은이의 옹졸한 자기기만이 탄생한다. 이래서는 과거의 나를 부수고 새롭게 태어날 용기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 아름다운 만년에 도전할 자격이 박탈당한다.

사회적인 상황, 세상 사람들 앞에서의 체면치레에 붙들려있다가는 현재의 부조리한 ‘나’, 육신의 병듦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 육체적 생존만을 갈망하는 구질구질한 나에게서 벗어나는 길이 보이지 않게 된다. 차라리 얼마 남지 않은 정력을 있는 힘껏 쏟아 붓고 쓸쓸히 사라지겠노라, 마음먹었을 때 생은 감춰놨던 제일 화려한 길을 살짝 내비쳐주기 시작한다.

과거의 나에게 선전포고를 하라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한 만년의 참모습이어야 한다. 사회적인 시선들, 사람들 눈치, 나이, 성별, 재산 같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위치, 체면을 상대로 전면적인 투쟁과 전복을 선포해야 한다.

‘안티에이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티로드(Anti Road)’로 발전해야 한다. 이 ‘안티로드’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습, 습관, 패턴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목적도 아니다. 오직 투쟁상대, 경쟁상대, 싸워서 넘어뜨려야 할 최후의 적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육체는 예전 같지 않고, 기력은 날마다 쇠락한다.


세상은 우리를 미친 노인네라고, 노망이 들려 정신이 나간 거냐고 부정할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혼삿길 막힌다며 타박할지 모른다. 배우자는 황혼이혼을 들먹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우정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우리 인생에 ‘미학’이라는 흔치 않은 열매가 달려주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라도 남겨보려 소망하는 것은 단언컨대 욕먹을 짓도, 욕심도 아니다. 다들 자신감을 잃지 않기 바란다.

출처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http://retirement.miraeasset.com)

 

“자네 그 나이에 아직도 일해?”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걸 어떡해?”라고 대답하는 사람. 환갑이 넘어 전재산을 날리고 남의 집 무덤 관리하는 묘막살이로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기를 꿈꾸었던 사람. 바로 1930년생 말띠 ‘김욱’ 선생이다. 유명한 작가이며 번역가이기도 한 김욱 선생은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계 최일선에서 30여 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퇴직 후에는 10여 년간 한국생산성본부 출판기획위원으로 일하면서 기획, 집필, 번역일을 담당하고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은 치열한 삶을 살면서 ‘폭주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폭주노년',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나이듦의 지혜',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 '당당하게 늙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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