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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도 대학입시처럼

글 김욱 작가

최근 일본에서는 사학(死學)이라는 장르가 대유행이다. ‘사학(死學)’. 말 그대로 죽음에 대한 연습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20년 앞서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노인사회다. 정년을 칠십 세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만큼 노인들이 판을 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죽음까지 미리 연구하고 공부해서 준비해두자는 생각이 노년층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 사학이라는 것은 수학과 비슷하다. 정답이 정해져있다. 인간이라는 공식 위에 수명이라는 답이 명확하다. 이 명확한 답에 조금이라도 편차를 둘 수 있는 방법은 공식에 적용된 생활이라는 숫자를 변화시키는 것뿐이다.

수명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절망하여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를 리 없으므로 넋 놓고 밥 세끼 먹고 잠들고 일어나면 그만이라는 허무한 생활은 답이 뻔하다. 구구단의 2단처럼 너무너무 재미없다. 그래서 인간은 삶도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음을 배우려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공부를 통해 나이 먹고 뻔해진 지루한 생활에 조금이라도 차이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일본에서 출간된 사학과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어보고 번역도 해보았다. 대강 정리하자면 죽음이 당장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철학적, 문학적, 종교적으로 살펴본다. 이론수업이다. 그 다음으로 사람들과 토론하고 자신이 묻힐 묘자리에 가서 누워보고, 부모님 묘와 조상 묘 등 죽은 자들이 남겨놓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흔적을 추억한다.

그들이 저 세상으로 떠나간 뒤로 이 세상에 남겨진 우리에게 어떤 과정을 거쳐 희미해져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가 살아있는 동안’의 가치를 발견하고 만족하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완해서 채워나가는 동기부여를 얻는 게 목적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지만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현대의 우리들만큼 죽음을 맹목적으로 증오한 예는 거의 없다. 과거에는 인간이 태어나 죽기까지, 나아가서는 사후까지 포함해서 ‘저쪽’과 ‘이쪽’, 혹은 피안(彼岸. 저승)과 차안(此岸. 이승)의 관계를 균형적으로 잘 유지해왔다. 그 관계를 암시하고 정의하는 의식들, 습관과 전설이 인간의 지혜를 장식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합리주의적 시각에서는 한갓 미신에 불과할지라도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들어 생과 사의 겹침을 납득시키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왔다.

오늘과 같은 과학문명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교회를 찾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스마트폰을 만들어 파는 대기업 면접시험에 관상쟁이가 떡하니 앉아있는 것은 불합리한 현상이 아니다. 두려움에 반응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을 넘어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지나친 경계와 절망이 죽기 전부터 우리를 심각하게 괴롭히는 질병처럼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병의 초기증상이 은퇴를 전후해서 우리 삶에 깃드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의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까닭은 내 주위의, 무엇보다도 내가 그런 증상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사학이 아닌 퇴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사학’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퇴학(退學)’이다. 퇴학이라고 하니 학교에서 사고치고 강제로 쫓겨나는 어린 학생들이 떠오르는데, 따지고 보면 그 아이들이나 은퇴를 코앞에 둔 이 나라의 중장년 세대나 다를 게 없다. 회사에서는 월급이나 축내며 젊고 싱싱한 재원들 머리 위에 군림하는 꼰대 취급 받고, 사회에서는 아이들 점심값 뺏어다가 노령연금 타먹는 낯가죽에 철판을 깐 늙은 갑질로 여겨지기 일쑤다. 이런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 대접과 처분도 여간해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맞서 싸우기에는 볼품도 없고 체면도 말이 아니고 그럴만한 기력도 점차 쇠해간다. 그러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당당하게 은퇴하기 위해서는 멋있게 물러나는 학문적 이론과 그 실천방법을 미리부터 공부해둬야 하는 것이다.

대학입시만 해도 그렇다. 수능 전날에, 혹은 수능 날 아침에 부랴부랴 참고서를 뒤적거리는 수험생은 없다. 짧게는 고등학교 3년을, 길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수능이라는 단 하루를 위해 투자한다. 수능시험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고 그 중차대함에 온 나라가 여력을 쏟아내는 판에 은퇴하고 직장과 사업장에서 물러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이 마무리되고 그보다 더 귀한 시절이 시작되는 그 하루를 위한 연구와 공부가 전무하다는 것이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처럼 이해되지 않는 행태를 내가 과거에 보여왔다는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퇴학’은 따로 수업이 없다. 그러므로 고학(苦學)이다. 헌데 공부 중에 최고는 누구한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울 것을 찾아 익혀나가는 것이다. 하나를 익히더라도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공부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먹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 거창하게 강연장을 쫓아다니고, 안 하던 운동을 하겠다며 갑자기 마라톤을 시작하고, 사업계획서를 들고 지인들한테 돈을 빌리러 다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은퇴를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은퇴도 공부해야 되는 세상

그러고 보면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은퇴도 공부해야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 비해 복을 많이 받은 시대에 살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났기에 은퇴를 공부할 수밖에 없다. 은퇴 후에도 한 번의 삶이 더 주어지기에 우리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 각박해진 현실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 시대에 은퇴는 끝이 아니다. 일종의 졸업이다. 졸업은 진정한 나를 계발하고 완성시키기 위한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은퇴란 그저 빛나는 졸업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출처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http://retirement.miraeasset.com)

 

“자네 그 나이에 아직도 일해?”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걸 어떡해?”라고 대답하는 사람. 환갑이 넘어 전재산을 날리고 남의 집 무덤 관리하는 묘막살이로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기를 꿈꾸었던 사람. 바로 1930년생 말띠 ‘김욱’ 선생이다. 유명한 작가이며 번역가이기도 한 김욱 선생은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계 최일선에서 30여 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퇴직 후에는 10여 년간 한국생산성본부 출판기획위원으로 일하면서 기획, 집필, 번역일을 담당하고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은 치열한 삶을 살면서 ‘폭주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폭주노년',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나이듦의 지혜',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 '당당하게 늙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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