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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의 신화를 되새기며

- 호국 영령에 대한 추모 행사 가져 -

회원들이 백마고지 위령탑에서 호국 영령들에게 묵념을 하고 있다. 

22일 오전 9, 서울평생교우회(회장 김완기) 회원 34명은 호국의 달을 맞아 호국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철원 백마고지 추모탑과 노동당사를 찾았다.

먼저 도착한 곳은 철원 노동당사. 해방 후 공산 치하에 놓여있던 이곳에 노동당사를 건축했다. 러시아풍으로 세워진 노동당사는 6·25 전쟁으로 피해를 봐 현재는 뼈대만 남긴 채 이곳을 찾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김진수(78) 씨는 노동당사는 1946년에 완공한 건물입니다. 당시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철원 지역 리()마다 쌀 200석을 공출했다고 합니다. 6·25 전쟁 중 포탄에 의해 2층과 3층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2001,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보호를 받는 건물입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백마고지 전승 기념탑과 위령탑을 찾았다. 일행은 위령탑 앞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 영령들에게 묵념 등으로 추모 행사를 했다.

김 씨는 저는 젊은 시절, 백마부대에 소속되어 월남전에 참전했던 참전 용사 중 한 사람입니다. 백마부대 선배들이 자랑스럽습니다.

395고지라고 불렸던 백마고지는 비록 나지막한 산이지만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주요 보급로를 지킬 수 있는 곳이기에 반드시 지켜내야 했던 격전의 고지였습니다고 말했다.

이곳을 안내하는 김진범 상병은 백마고지는 195210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 군간 혈전의 고지입니다.

106, 중공군은 북쪽 5전방에 있는 봉래호의 수문을 폭파해 아군의 후방을 관통하는 역곡천을 범람시켜 아군의 증원과 군수지원을 차단하였습니다.

김진범 상병(가운데 군복차림)이 백마고지 전투와 비무장지대 주요 시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10일간,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하고 일곱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전투 끝에 마침내 이 고지를 사수하였습니다. 중공군 제38군은 총 9개 연대 중 7개 연대를 투입하였는데, 그중 1만여 명이 전사자와 부상자를 내었으며, 우리 국군 제9사단도 총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혈전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철원 평야를 지켜낼 수 있었으며, 9사단은 상승 백마라는 칭호를 얻었고 이 고지를 백마고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고지를 잃었다면 국군은 동두천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김 상병은 숲으로 뒤덮인 바로 저곳이 비무장지대이며, 그 너머가 평강고원입니다. 이곳은 전차가 쉽게 넘어올 수 있는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장벽을 쌓아 놓기도 했습니다. 오렌지색의 넓은 판들은 비행기가 잘못 월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운 월경 방지판입니다고 말했다.

김영심(76) 씨는 제 고향은 평안도입니다.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했으며, 공산당을 피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을 넘어온 사람입니다. 이곳에 오니 함께 피난하지 못하고 북에 남아 공산 치하에서 고초를 겪으시다 운명하신 부모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픕니다.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국토를 수호하다가 산화한 국군 장병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이 전쟁의 공포와 피해에 무감각해 지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김원규 기자 won6849@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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