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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비(戰蹟碑) 순례(2)

-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 -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13길 인근에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가 있다. 지난 9일 오후, 이곳 전적비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날씨 탓인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전적비는 세월의 흔적을 껴안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전적비로 가는 길목에 이정표가 없어 찾기가 어렵다. 마을 사람조차 전적비를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다. 그래서 초행길에 나선 이들에겐 전적비를 찾아가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104고지 정상에서 가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된 채 버려진 이정표만이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

해병대사령부가 건립한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다.
해병대 104고지 전적지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내려갔던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1950921일 서울탈환을 위한 남ㆍ북한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혈전 끝에 한ㆍ미 해병대가 104고지를 점령했다. 다음날(22) 북한군이 역습을 감행했으나 아군 해병대가 필사적으로 이를 격퇴했다.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도다.
이 전투로 인해 아군 전사자 178명과 공산군 1,750명이라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해병 1개 중대 병력이 26명만 생존할 정도로,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1958928일 전투의 의의를 되새기고 전사한 장병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해병대사령부에서는 이곳에 높이 1.5m의 기념비를 설치했다. 현재 7.8m 높이의 전적비는 1982928일 이 전투에서 산화한 해병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재건립한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이정표가 팽개쳐져 있다.
전적비 전면 하단에는 해병대 104고지 전투에 대한 간단한 약사(略史)가 기술되어 있다. 후면과 측면에는 진혼시(鎭魂詩)와 참전지휘관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해병대 104고지 전적지는 625 당시 서울 수복의 교두보가 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해병대의 충혼 정신이 깃든 곳으로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다. 20021122일 국가보훈처가 이곳을 현충 시설로 지정했다.

104고지 정상에서 체력단련을 하던 한 실버는 전적비 주변에 일반 가옥이 들어서면서 사방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처음 오는 사람이 찾아오기 어렵습니다. 전적비가 푸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고 했다.

    

김종화 기자 jonghwa50@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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