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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규 실버의 영원한 친구

- 색소폰과 더불어 산다 -

경기도 용인시 동백동 거주 백장규(68) 씨는 우리 곁에서 밤낮으로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이다. 남과 다투지 않고 살아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라는 표현이 어울릴 이웃이다.

백장규 씨가 학원에서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다.
그런 그를 동백동 주민들은 잘 알고 있다. 14일 오전 11시, 알토 색소폰이 든 케이스를 짊어지고 집을 나서서 한참을 걸어 학원에 가는 모습이 보였다. 두서너 시간이 지나면 같은 차림으로 그는 귀가한다.

그는 색소폰과 함께 일상을 보낸다. “이 색소폰은 나의 동반자지요. 이 녀석이 없으면 내 삶은 무의미할 겁니다”고 하는 그의 얼굴 표정엔 진지함이 묻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개미 쳇바퀴 돌 듯 집에서 학원까지 오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소화하는 것은 아니다. 학원에선 연습하고 바깥에서는 힘들거나 외로운 실버들을 위해 흘러간 옛 노래를 선사한다

사실 몇 년 전 퇴직을 하고 처음에 좌절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60대 초반에 노인들 틈에 끼일 수도 없었다. 산책 삼아 근처 공원 근처를 거닐다 색소폰 교습을 한다는 학원을 발견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더니 원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를 맞았다.

백장규 씨가 학원 근처 공원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다.
며칠 뒤 백 씨는 알토 색소폰을 샀다. 악보를 전혀 볼 줄 몰랐던 그는 처음에 애로가 많았다. 물론 소리 내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굽히지 않았다. 그 정신이 오히려 몇 가지 불리한 조건을 꺾어 누르는 성취동기가 되었다.  

이윽고 그에게는 퇴직 후 얼마 동안 그를 괴롭혔던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소리도 어느 정도 내게 되고 쉬운 대중가요 몇 곡도 익혔다.

학원에도 더 자주 드나들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은 물론 아파트 주민들과의 인간관계가 변해 갔다. 보람된 여생이 어떤 것인지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복식 호흡을 생활화함으로써, 날이 갈수록 건강도 호전되었다.

그가 연주할 수 있는 대중가요, 특히 흘러간 옛 노래는 수십 곡이다. 그의 수첩엔 그 곡목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유정 천리’, ‘한 많은 대동강’ , ‘해운대 엘레지등등.

- 트로트 일색이군요.
“저도 노인 아닙니까 어려서부터 귀에 익었던 장르이고, 우리 정서에 맞는 곡이라 이 곡들을 부르고 연주하는 걸 좋아합니다.”

- 봉사 활동을 많이 하시는 줄로 압니다. 주로 어디에 갑니까?
“경로당과 요양원 등입니다. 한 달에 대여섯 번 정도 되지요. 거기 있는 분들이 선호하는 곡들을 뽑아서 메모해 다닙니다.”

-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최고 인기곡은 그 노래 중 어느 것입니까?(웃음)
“‘울고 넘는 박달재’로 여깁니다. 그 노래의 발상지는 승용차로 한 시간 반 남짓인 제천이라, 현장에서 한 번 연주하고 싶은 꿈도 꿉니다.”

잊을 수 없는 일화 중 한 번은 요양원에 가서 ‘울고 넘는 박달재’로 같이 어울렸는데, 정신 지체를 가진 분이 말하더란다. 백 씨가 자기 아들을 닮았다며 집에 같이 가서 자고 가면 안 되겠느냐는 청을 해 눈시울이 젖는 순간이었다.

그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강조했다. 색소폰은 고가의 악기도 아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이니 노후에 모두가 사귈 수 있는 친구라고 덧붙였다.


이원우 기자 novellww67@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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