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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을 아시나요?

-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의 비법을 배우자 -

시월이 오면 온 세상이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찾는다는 생각보다 노벨과학상의 향방이 어찌 되는가? 하는 궁금증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제목으로 나와 있는 21:0은 올림픽 야구 시합의 결과도 아니고 월드컵 축구의 스코어도 아니다. 2015년 노벨과학상에 나타난 일본 : 한국의 수상 결과이다.

1977년 교통사고로 이휘소 박사가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도 거의 틀림없이 노벨물리학상이 그에게 돌아왔다고 본다.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 교수도 이휘소 박사가 함께 타야 할 상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피터 힉스 교수는 수상 강연에서 “이 상은 이휘소 박사의 몫”이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힉스와 함께 연구하며 그 정체성을 몰랐던 소립자를 최초로 ‘힉스입자’라고 명칭을 붙여준 주인공이 이휘소 박사이니 그럴 만도 하다.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가지타 교수는 1981년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고시바 교수에 이어 도스카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대학에서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30년 넘게 대물림을 하면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어서 연구의 맥이 끊기지 않고 맥맥히 이어 오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연구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뒷받침을 하였다.

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기타사토대학의 오무라 교수는 처음에 야간고등학교 선생을 하며 힘든 환경의 어두운 터널을 뛰어넘어 지방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는 출퇴근할 때도 비닐봉지와 숟가락을 갖고 다니며 흙을 채취하여 미생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열성을 가졌다.

그러면서 ‘자기 생애에 한 번만이라도 새로운 약이 되는 성분을 찾아내면 행운’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하나는커녕 26가지나 되는 많은 생약 성분을 발견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는 “젊은이들이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 나는 다른 사람보다도 세배 이상의 실패를 맛보았다”고 하였다.

올해에 처음으로 노벨과학상의 문을 연 중국은 평생 한 우물만 파던 중국중의과학원 투유유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녀는 개똥 쑥에서 말라리아(학질) 특효약인 ‘아르테미시닌’을 뽑아 1990년대 이후 100만 명 이상의 환자들의 목숨을 건졌다 한다. 투유유 교수는 190차례나 실패를 거듭하며 한 우물을 파서 아름다운 영광을 얻게 되었다.

투유유 교수는 중국에서 이공계 분야 연구자 중 최고 권위자에게 주는 원사(院士)도 못 받고 박사학위도 획득하지 못하였으며 선진외국의 유학 경험도 없는 3무 과학자(三無科學者)로 통하는 노력형 교수이다. “젊은이들이여 한 우물을 파라. 물이 나올 때까지!”라고 대학원생들에게 격려해 주던 서울대학교 최기철 교수의 금언에 가장 잘 들어맞는 연구자가 바로 투유유 교수와 일본의 오무라 교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투유유 교수가 근무하던 중국중의과학원은 1969년 마오쩌둥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즉 마오쩌둥은 1994년 파격적인 보상을 내 걸고 해외 고급인재 100명을 데려온다는 ‘백인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이 후진타오의 ‘천인 계획’을 거쳐 시진핑의 ‘만인 계획’으로 발전하여 중국의 노벨 수상자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리라 본다. 

중국이 이제부터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이 시작한다면 일본은 스승과 제자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수십 년을 대물림하여 연구를 계속하기 때문에 노벨과학상의 꽃이 더욱 활짝 필 전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유독 한국만이 노벨과학상에 신고도 못 한 처지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인구 5천만 명 이상으로 GDP 2만 불 이상의 국가로 인정받는 2050그룹에 7번째로 진입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세계 10대 무역 대국에 들어갔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 고성장의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이제부터라도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쉽게 결과물을 얻으려고 단기연구에만 매달리는 안이한 틀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연구계획에 매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2011년 대한민국 정부는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하였다. 이제부터라도 우수한 과학자들이 함께 모여 왕성한 토론과 논쟁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그들에게 충분한 연구비를 제공하고 필요한 것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연구 도가니’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기초과학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10년 이상은 기다려주는 아량을 베풀어야 빨리 21:0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완호 박사(수필가,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wanho-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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