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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1)

- 우선, 한국을 비하하는 기류가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

 

한국 과학교육단체 총연합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과학 경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초·중·고등학교 학생 및 지도교사 그리고 교사대회에서 수상한 선생님들을 위시한 78명이 지난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간 일본을 다녀왔다. 우리 국제 교류단이 작년까지는 중국을 다녀왔는데 올해에는 그 행선지를 일본으로 바꾸었다.

일본인의 구성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일본 섬에 거주하던 원주민인 아이누족과 동남아를 거쳐 일본으로 올라온 남방민족과 우리나라와 시베리아를 거쳐 일본으로 내려간 북방민족이 혼합하여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동양계의 민족으로 얼굴 모양이나 문화 형태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게다가 모두 같은 유교 문화권에 길들어져 온 3국이 여러모로 공통점을 공유하면서 선의의 경쟁과 투쟁 속에 함께 해 왔다.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에 백제에서 수많은 도공(陶工)을 데려가 그들의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인을 조센진(朝鮮人)이라는 선입관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배용준, 소녀시대 같은 수많은 연예인의 한류(韓流) 바람에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우리를 비하하는 기류가 깨끗이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2011년 3월 엄청난 지진에 의한 쓰나미 피해가 컸을 때 우리나라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일본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아직도 일본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새어 나오는 방사능의 공포 속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당시 쓰나미가 건물을 통째로 삼켜버리지를 않나, 쓰나미 여파로 수백 대의 자동차들이 종이배 떠내려가듯 쓸려 다니지를 않나, 참혹한 천재지변의 격동 속에도 무서우리만큼 침착하고 질서정연한 일본 국민의 의연한 행동을 보면서 모든 세계인이 놀라기도 했다.

과학 내지 과학 문명을 가꾸고 보살피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한다. 우에노 국립과학박물관을 가 보아도 그 진열 내용이랑 전시 방법을 배워야한다. 중국의 국립 자연 박물관(自然博物館, 자연사박물관에서 史자가 빠짐)이 거대하고 스케일이 큰 반면 일본의 국립과학 박물관은 아기자기하고 산뜻하다. 그러면서 있을 것은 모두 있다.

공룡화석만 하더라도 오히려 중국 것보다도 일본 것이 더 다양하고 크며 흠집이 적다. 일본관에는 과학 노벨상 수상자가 13명 있는데 그 중 물리학상이 6명, 화학상이 6명, 생리의학상이 1명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과학 노벨상을 탄 수상자가 한명도 없는 것이 여간 안타깝지 않다. 틀림없이 우리나라도 과학 노벨상이 불원 찾아오리라 본다.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지’는 노벨상 역사상 박사 학위도 없는 유일한 학사 출신이다. “당신은 어떻게 노벨상을 받게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화학 실험을 하다가 비커를 깨트렸다. 선생님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 실험하다가 비커를 깨트렸습니다. 죄송합니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꾸지람은커녕 “다나카 고이지 군, 괜찮다. 비커 한 개가 아니고 앞으로 수십 개는 더 깨트려야 네가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용기와 격려를 해주셨다. “그 선생님의 격려와 사랑에 힘입어 오늘 본인이 노벨상을 타게 되었다”고 했다. 
 
동경타워는 1958년에 높이 333m로 세워졌다. 도쿄타워에 올라 250m 높이에 있는 특수 전망대에서 사방을 바라보니까 탁 트인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시원한 위치임이 틀림없다. 이 동경타워는 파리의 에펠탑을 모방했으나 그 크기나 장엄함이 에펠탑에 비길 수 없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 백주년 기념으로 1889년 에펠탑을 세운다고 하니까 수많은 파리지앵들 특히 문인과 예술인들 같은 지식인들이 엄청나게 반대하였다. 그들이 내건 명분은 흉측한 쇳덩어리를 어디 이 아름다운 파리 한복판에 세우느냐고 하면서 반대하였다.

그 당시 대표적인 문인인 모파상은 철근으로 된 흉물을 파리 한복판에 세울 수 없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만약 파리에 그것을 세우면 내가 파리를 떠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에펠탑이 세워지니까 모파상은 결국 파리를 등지고 말았다. 또 나중에 에펠탑이 세계적인 명물로 주목받자 작곡자 구노는 에펠을 찾아와 피아노를 연주해 줌으로써 에펠탑 반대를 접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저녁때 도쿄 프린스호텔에 들어와 쉬었다. 호텔에 들어오니까 1979년 나로서는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왔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문교부 편수관으로 있을 때 문교부 산하 기관의 전문직 30명이 일본의 Japan Foundation 초청으로 연수를 왔다.

아직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이라 현대감각에 맞는 빌딩도 많지 않고 호텔의 자동문도 흔하지 않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는 신주쿠에 있는 최고급 게이오 프라쟈 호텔에 숙박했다. 한국에서 호텔 문을 밀고 들어가던 습관대로 자동문을 확 밀고 들어가려다가 머리를 꽝 부딪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며칠 그 호텔에 묵고 있다가 니카다로 떠나면서 대전지역에서 온 어느 연구사가 호텔 목욕탕에 있는 커다란 몸 타월이 탐이 나서 집에 가져가서 쓰고 싶은 마음에 가방 속에 하나를 집어넣었다.

몇 시간을 기차 타고 달려 니카다에 도착했다. 그런데 호텔에서 니카다 기차역에 전화하여 몇 호실 숙박한 우리 멤버를 찾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방의 몸 타월이 하나 부족하단다. 그리하여 그 연구사는 부끄러운 행동에 몸 둘 바를 모르면서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아무리 우리 한국인이 그 수건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수백 리 떨어진 곳까지 전화하면서 찾으려 한다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조센진으로 취급하려는 심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서운했다.


정완호 박사(수필가,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wanho-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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