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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에 심은 정조대왕의 효심

- 발길 머무는 곳마다 '부모은중경' 을 심어주다 -

조선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으로 창건했다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용주사(龍珠寺)는 조선 시대 사찰이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묻힌 융건릉 근처에 있으며,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직접 세운 대표적인 왕실 원찰이자 조포사(造泡寺)였다. 따라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이다.

용주사 입구에 홍살문과 삼문이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다.

서울 화계사 불교 대학 입문 기초반 100여 명은 지난 7일 용주사를 견학하기 위해, 화계사 광우 스님(교무담당)의 인솔하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3대의 버스에 먹거리까지 충만하게 싣고 신바람 나는 분위기로 화성을 향해 달렸다.

효림당에서 서울 화계사 광우 스님이 참가자들에게 불법을 설명하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쯤 용주사에 도착한 일행은 맨 먼저 ‘효림당’이란 교육장에 모여 요즘 불교방송에서 ‘소나무’ 강의로 한창 뜨는 광우 스님의 학습적 법문을 한마디라도 놓일세라 열심히 듣고 읽으며, 1시간 30분 동안 예불 의식강의와 용주사의 유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용주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주문이 아닌 홍살문과 ‘삼문’이었다. 광우 스님은 “홍살문은 조선 시대 마지막 원찰(願刹)인 용주사입니다.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신 능침 사찰로. 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을 지니게 하려고 홍살문을 세웠으며, 정조의 효행은 이곳에서 1년에 6회 정도의 재를 모셨다고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광우 스님은 강의 문에서 “'삼문’이라는 말은 삼문 역시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궁궐 양식입니다. 좌우에 7칸 행랑을 지닌 맞배지붕 양식으로 동서의 옆문과 중앙의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삼문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아마도 정조는 삼문 중, 가운데 문으로 출입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삼문 입구에서 관광해설사가 용주사에 대해 재미나는 입담으로 관중을 향해 설명하고 있다.

홍살문과 삼문 옆 효행박물관(孝行博物館)에서는 정조대왕이 기증한 부모은중경을 비롯하여 보물 제1095호 봉림사 아미타불 복장 유물, 정조대왕의 친필인 봉불기복게, 김홍도의 사곡 병풍 등 용주사가 소장하고 있는 격조 높은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은 엄격하게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삼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오니 천보루(天保樓)와 5층 석탑이 위엄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인솔자 광우 스님은 “천보루 앞에 있는 5층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탑입니다. 하지만, 석탑은 조선 시대 작품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어요”라고 말한 스님의 표정은 부처님 사리에 대한 깊은 감정이 베어져 있었다.

천보루와 5층 탑 앞에서 광우 스님과 여행객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편, 이곳 문화관광해설사는 “대웅보전의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웅보전에는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龍珠寺 大雄殿 後佛幀畵)가 유명한데, 유교적 사상을 많이 받은 김홍도(1745~?)의 그림이다 아니다를 두고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해 답답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웅보전 외벽 그림들은 부처님의 살아 생전에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모습들을 모두 볼 수 있으니 천천히 관람하세요” 라며, 해설을 끝냈다.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100여 명의 화계사 견학팀이 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일행은 대웅보전에서 조금 걸어가니 부모은중경탑(父母恩重經塔)이 있는데 탑 전체에 부모님 은혜에 대한 효심 어린 글귀로 가득 차 있으며 ‘호성전(護聖殿)’ 내부에는 장헌세자와 혜경궁홍씨 정조와 효의왕후 위패가 화려하면서도 위엄 있게 모셔져 있어 정조의 효심이 극진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조는 용주사를 통하여 죽은 아버지의 명복과 살아계신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동시에 빈 것이다. 일반적으로 절을 창건할 때에는 승려들이 시주받아 승려장인들이 설계와 시공을 전적으로 담당하였지만, 용주사를 창건할 때에는 관의 주도로 비용을 전국에서 모았을 뿐만 아니라 관청에 속한 장인과 승려장인이 모두 참여했다.


문지영 기자 mun99056@silvernetnews.com
류충복 기자 choboryu@silvernetnews.com



공동취재기자:
류충복 기자[chobor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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