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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난 아파트로 이사 갑니다

- 지난날은 늘 힘든 을(乙)로 살았다 -

일하기 싫으면 여행하고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고 살고 또 시어머니를 갑으로 모시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시대에 사는 한편, 자신을 위하고 몸 편해지고자 젊어서 어려움 참고 견뎌낸 시절, 보람보다 남이 사는 걸 상대적으로 부러워하는 시대 탓도 도사린다.

무엇보다 지금은 배고픔은 없는 시절이다. 지난 14일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용월리에서 만난 팔십을 향해가는 세 여인(나이 78·77·74세)은 가난한 시절과 유교식 남아선호 사상이 깊게 배인 길을 여자로 고스란히 걸어온 분들로 함께 여담을 나눴다. 살아보려고 한 지독한 노동에 찌든 밤낮을 수없이 지나서 지금은 딱 1인분의 웃음으로 아픔을 녹인단다.

왼쪽부터 강성원(74), 정복재(77), 신기복(78) 씨가 열무김치에 보리밥을 먹으며 여담을 즐기고 있다.

을(乙)의 삶을 산 세 여인은 파란만장했다. “내가 봐도 고린 쟁이야, 시집 큰 엄니가 남편이 맹추 같아서 기집이 미친년같이 설치고 나부 된다야 오토바이 타고 빠른 일 보러 다닌 모습에 미친년이 되기도 했다."

“장사 물건 하러 다니는 일이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장사도 힘든데 월남 고엽제로 병원 들락거리며 아팠던 남편 때문에 살림이 서서히 거덜 나고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자식 낳고 견디며 억측으로 살아냈지. 돌이켜 생각하면 맘 어지럽고 늘 돈 새가 들었다.”

“시집와서 늘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팠고 일만 죽도록 했어. 남편이 눈치껏 남긴 밥에다 숭늉 보태고 물 말아서 그것도 조카 애랑 나눠 먹었어. 그리고 식당에 일 다녔어. 밥 챙겨주면 집에 와서 식구랑 나눠 먹었다. 나중에는 며느리가 내처럼 배고플까 봐 악착같이 일해서 논밭 사고 자식 몫도 챙겼다. 젊어서 내처럼 배곯지 말라고.”

오늘 정복재(77·삼죽면) 실버 집에서 모인 세 여인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산을 넘고 내를 건넜다. “남정네 아파서 병원비 오백만 원을 내려니 돈이 모자라서 일가친척에 손 내밀었다가 외려 내가 부끄럽더라”라는 친척들에 대한 서운함도 굳은살이 박힌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일만 하다가 노년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큰아들이 '엄니가 살 아파트를 계약했다'고 이사를 서둔단다.

정복재(오른쪽) 실버가 열무김치를 나눠 놓고 서로 환담하며 편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야속한 지난 시절을 두고 지금은 푸념이 되었지만, 열무김치를 한가득 담아서 두 분(신귀복:78·강성원:74)을 불렀단다. 손수 기른 열무를 뽑고 빨갛게 막 익은 고추를 갈아서 국물김치를 만들고 보리밥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보리밥처럼 씹으며 즐겼다.

보리밥도 못 먹던 시절에 그 보리밥을 생각하니 지금은 보리밥이 그리웠단다. 담은 국물김치와 손수 농사지은 양파 한 단씩을 친구들에게 더 얹어 건네고 건네받으며 “우짜라고!”하며 세분은 또 웃어젖혔다.

늘 이웃에서 땀 흘리고 같이 한 이들은 이곳으로 시집온 이들이었다. 이제 나이 들고 일할 기운이 소진되어서 아들이 원하는 대로 안성시내로 이사 가게 되었다고, 그곳 경로당도 아들과 같이 미리 가보았단다.

이들이 만나면 웃음이 터지는 건 을로 산 스트레스를 날리는 방법이었고 곧 살맛이었다. 서로의 사정이 엇비슷해서 이야기랑 농담도 웃으며 산 것은 서로 돕는 마음이 앞장섰기 때문이었단다. 열무김치를 손수 담아서 건네는 산골 풍경은 무더운 날에 핀 웃음꽃이 되었다.


김임선 기자 sun4750@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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