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문화행복

미래·경제

복지·환경

국제

시민·사회

생활건강

영상뉴스

사진뉴스

특별취재

SNN칼럼

오피니언

오늘의 건강

여행 & 맛

포토에세이

생활 한자

지구촌산책

한국의 기차역

인물과 역사

디카교실

자연과 야생화

시사 상식

복지관소식

실버넷 만평

전국의 아름다운 길

은퇴 후 자산관리

외국어

기타

확대 l 축소

신사복과 막걸리

- 신사복 입고 데모하며 막걸리 먹던 시절 -

나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근처에 살고 있다. 이곳 큰길의 가로수는 한 가지에 일곱 개의 잎이 붙어 있는 칠엽수인 마로니에라는 나무가 대부분이다. 이곳에 옮겨 심은 지 20년이 넘어서 이제는 제법 둥치가 굵어졌다. 나는 그 가로수 길로 다니다 여러 번 넘어질 뻔하였다.

나무 주변을 콘크리트로 다져놓았는데도 심하게 갈라져 마치 시골 텃밭에 두더지가 지나간 모양이다. 나무뿌리가 땅을 파고 지나면서 콘크리트 바닥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얼마나 크기에 그 단단한 시멘트 바닥이 뒤틀린단 말인가! 생명의 힘은 단순한 역학 구도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 같다. 3월이면 그 길옆 언덕에는 개나리꽃이 피기 시작하여 노란 색깔의 병아리 동산을 이룬다.

이러한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어느 해 4월 나는 난생처음 어렵사리 신사복을 맞추어 입는 호사를 하게 되었다. 회색 체크무늬의 아래위 정장이었다. 체크무늬는 동적인 느낌이라 회색 바탕이 그것을 약간 안정시키는 분위기를 만드는 색깔이었다. 그 당시는 모두가 힘들게 살 때라 교복 아니면 군인 작업복을 염색하여 입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는 주거환경이 마땅치 않아 입주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보내면서 몇 해를 모아 겨우 옷 한 벌 해 입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해 3학년이 되면서 아침 10시 제2교시 김기석 교수의 철학 강의 시간인데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시작했다. 동대문을 지나 종로를 거쳐 광화문까지 내달은 우리는 내친김에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로 향했다.

이렇게 시작된 1960년 4월 19일의 ‘4·19혁명’은 내가 난생처음 데모를 한 날인 동시에 신사복을 입은 날이었다. 우연하게도 내겐 신사복과 혁명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날로 각인되었다. 그 당시 GNP 67달러밖에 안 되는 세계 최빈국 반열에 들어가는 대한민국은 저녁이면 다리 뻗고 잠잘 곳이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생들의 모임은 요사이 학생들의 MT나 여유로운 동아리 모임보다는 초라한 막걸리 파티가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 우리들이 주로 찾는 곳은 지금은 재개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무교동 뒷골목 피맛골의 빈대떡집들이었다.

술에 취하면 손님의 건강과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여 막걸리를 적당량만 들도록 유도하는 주인아저씨의 훈훈한 휴머니즘이 그리워 다시 찾는 ‘열차집’이나 빈대떡을 유난히 맛있게 구워내는 ‘용인집’을 많이 찾았다. ‘스님이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은 절간이 되고 술꾼이 절간에 들어가면 그 절간은 술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곳에서 설익은 우리 학생들은 문사철(文史哲)의 토론장이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리하여 ‘데·칸·쇼’에 관한 책도 열심히 읽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생각 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는 말을 설파한 데카르트(데), 순수 이성비판이란 거대 담론의 대가 칸트(칸), 그리고 논리적 독설가로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쇼) 같은 사람들을 술안주로 마구 씹어대는 설익은 지성이 우리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있었다. 그 당시 술좌석에서는 왜 그리 담배들을 많이 태웠는지! 지금 같으면 아래와 같은 심한 구박을 주었으련만····

첫째 담배는 니코틴을 비롯한 수많은 독소가 들어 있다. 후두인 숨구멍으로부터 허파까지 이르는 기도(氣道) 즉 기관지 표면에는 수많은 섬모라는 털이 있다. 그 털이 허파로 들어가는 각종 세균이나 먼지 같은 불순물을 걸러낸다. 그런데 니코틴은 그 섬모세포를 모두 녹여 버리기 때문에 각종 병균이 쉽게 우리 몸에 침투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둘째 담배 한 가피를 피면 뇌세포 10만 개가 파괴된다고 한다. 그러니 한 갑을 다 피우면 200만 개의 뇌세포가 사라져 버린다. 니코틴이 뇌세포 입장에서는 폭탄보다도 무서운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 담배 연기에 많이 들어 있는 일산화탄소(CO)는 연탄 피울 때 나오는 연탄가스와 같은 것으로서 많은 사상자를 낸 바로 그 원흉인데 그것이 그대로 허파를 통해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Hb)과 결합한다. Hb는 산소와 결합하여야 하는데 산소보다도 230배나 결합력이 강한 CO가 산소를 제치고 Hb와 결합한다. 그러면 세포는 산소를 받는 대신 독소인 CO를 받아 세포가 망가지게 된다. 세포가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넷째 담배 연기 속의 유해물질들은 허파세포를 변형시켜 그것을 암세포로 만들어 폐암으로 발전시키는데 폐암 중 70% 이상이 담배가 원인이라 한다. 암중에 가장 무서운 폐암은 치료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진전 속도가 빠르다. 최근에 와서 폐암은 암 중에 빈도수가 1, 2위를 다투고 있음을 본다.

애연가들에게 염라대왕만큼이나 무서운 담배를 그래도 피울 것이냐? 하고 반문하고 싶다. 담배는 한 대 피우면 한 대 만큼 나쁘고 두 대 피우면 두 대 만큼 나쁘다. 그러나 담배와 달리 술은 예로부터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에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수(數)놓아가며/무진무진 먹세그려/이 몸이 죽은 후에····’ 이렇게 시작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의 정서는 술을 가까이 한 것이 틀림없다. 다만 무진무진 먹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량의 술은 오히려 우리 몸에 보약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적당량’이라는 한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 본인이 조절해야 한다는 책임론이 따른다.

우선 그래프에 X축을 음주량, Y축을 사망률로 나타내 보자. 그리고 그 그래프 안에 음주 곡선을 그리면 거의 U자 모양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술을 전연 안 마시는 사람은 사망률이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술을 조금 마시는 경우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져 X축 바닥 가까이 평행선으로 사망률이 아주 낮은 상태를 그리며 간다.

그러다가 술을 많이 마시는 경우 갑자기 사망률이 급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망률이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하는 변곡점이 어디쯤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것은 사람마다 다른데 그 변곡점이 우리가 술을 먹었을 때 ‘알딸딸’한 상태로 보면 좋다고 한다.

주의하여야 할 점은 그 알딸딸한 상태부터 술을 더 많이 마시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조절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마시는 사람들이여 그 시점에서 ‘무진무진 먹세그려’ 대신에 ‘절제하는 훈련’ 좀 해 보심이 어떠하겠는가! 그리하여 알딸딸한 상태에서 그 술의 양을 조절하고 즐길 줄 아는 성숙한 술 문화를 슬기롭게 정착시키는 것이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니겠는가!


정완호 박사(수필가,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wanho-chung@hanmail.net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