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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서원(2)

- 영남 유학의 중심지 안동 도산서원 -

지난 13일 오후 도산서원(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주차장에서 서원에 이르는 산 쪽 언덕의 단풍나무는 벌써 가을을 알리는 붉은 색이 가지 끝 잎사귀들부터 물들어지고 있었다.

안동호를 바라보는 서원은 층층이 지어진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장 멀리 바라보이는 도산서당인 전교당은 수리 중인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서원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우측에는 나지막하게 도산서당이 있고 좌측에는 농운정사가 있다. 이 두 건물이 퇴계 선생이 세운 건물이고 이 뒤와 옆으로 이어지는 다른 건물은 후세에 세워진 것이다.

영남 유학의 산실인 도산서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정문에서 돌계단을 오르면 현재 도산서원의 주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전교당(典敎堂, 보물 제210호)이 나온다. 이 전교당 현판 글씨가 한석봉의 글씨다. 예상했던 것처럼 보수 중이라 높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고 통행도 할 수 없어 뒤편에 있는 상덕사(尙德祠)를 볼 수 없었다.

서원은 한국 정신문화의 성지로 퇴계(退溪 李滉;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곳으로, 1969년에 사적 제170호로 지정됐으며, 동재(東齋)와 서재 각 정면 3칸으로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유생들이 공부하며 머무르던 곳이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건축하고 동편 마루를 시습재(時習齋), 서쪽 마루를 관란헌(觀蘭軒)이라고 이름 지을 정도로 학문을 중시했다고 한다.

'도산서당'이란 작은 현판이 관람객을 부른다.

애초에는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던 곳으로, 1575년(선조 8) 한호(韓濩)의 글씨로 된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영남(嶺南) 유학의 중심이 됐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소수서원·숭양서원 등과 더불어 정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광명실은 서고로서 동서 광명실이 있는데, 이황을 비롯한 여러 유학자의 문집을 모아두었으며, 현재 약 1,300여 종 5,000여 권의 책이 소장돼 있다.

퇴계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을 운영했으며, 이어 도산서당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했다.

선생의 업적은 중종, 명종, 선조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관람객이 유물전시관의 유물을 둘러보고 있다.

1570년 선생의 타계 후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지어 모시면서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됐고, 그 명성을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최근에 새로 단장된 유물전시관은 1970년에 보수를 할 때 지은 건물로서 이황의 유품인 자리·베개 등의 실내비품과, 매화연·옥서진 등의 문방구와 청려장·매화 등·투호·혼천의 등이 소장돼 있다.

귀경길에 시간을 내어 들렀다는 젊은 부부는 “몇 차례 둘러보았지만, 퇴계 선생의 업적이나 도산서원의 무게감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익수 기자 kis0317@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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