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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수종사에서 만난 한음 이덕형

- 임진왜란 혼란기 한음의 공을 되 세기다 -

밤과 도토리가 떨어지고 대추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옅은 구름 조각이 하늘 높이 간간이 흩어진 지난 25일 한국교육개발원 동문 실버 13명은 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을 올랐다. 운길산역에서 운길선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 있는 등산로 안내판에 정상(610m)까지의 거리는 3.10km,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된 것을 보고 무난한 산행이 될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좁게 난 산길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운길산 정상에서 등산대원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등산로는 위험한 곳은 없었지만 가파르고 돌이 많아서 예상보다는 산행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간간이 알밤과 도토리가 길에 떨어진 것을 보고 이를 주어서 숲 안으로 멀리 던져 넣었다. 겨울에 산짐승의 먹이가 됐으면 해서다.

계곡의 낙엽이 쌓인 곳에 멧돼지가 파헤친 듯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다가 잠시 쉬며 준비해온 간식을 먹으며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의 경관은 절경 중 하나다. 운길산 정상을 알리는 표석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한 후 수종사를 향해 하산했다. 수종사 경내에 세워져 있는 수종사 사적기에 의하면 “수종사는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옛 가람이다.

1458년 세조가 두물머리에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 보니 그 종소리는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져 나는 소리였고, 그 안에서 18 나한을 발견한 후 이 절을 중창하여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한음 이덕형의별서터 안내판이 서 있다.

수종사에서 송촌리로 향하는 길이 시작하는 부분에 광주이씨한음상공파종회가 세운 ‘운길산 수종사와 한음 이덕형 선생’ 안내 간판이 서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한음 이덕형(1561-1613)은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여가를 내어 사제촌(현재의 송촌리)에 있는 별서(別墅:농장이나 들에 따로 지은 집)에 머물면서 수종사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자주 걸었다.

선생은 7년여의 임진왜란을 수습하는 데 큰 공훈을 세웠으나 극심한 정쟁에서 오는 국정의 혼미에 몹시 상심했다. 이때 주지 스님에게 다음의 시 한 편을 남겼다.

산들바람 일고 구름지는 개었건만 / 사립문 향하는 걸음걸이 다시금 더디네 / 구십일의 봄날을 시름 속에 보내며 / 운길산 꽃구경은 시기를 또 놓쳤구나 /

한음은 30세에 대제학의 지위에 오름으로서 조선 시대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대제학은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의 출제와 채점을 담당했다. 과거를 통한 인재 선발뿐만 아니라 중시(重試:과거에 합격하였으나 관료로 진출하지 못한 사람 또는 당하관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를 출제했다. 또한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역할도 하며, 집현전의 운영과 기획도 관장했다.

한음은 임진왜란 중 병조판서도 하였으며, 명나라에 가서 외교 능력을 발휘하여 원병을 끌어와 병란 수습에 앞장선 인물이다. 서인인 한음은 동인인 오성 이항복과 함께 당파를 초월하여 우정을 나누며 공명정대한 인재를 발탁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한음은 광해군이 배다른 적자 동생인 영창대군(9세)을 죽이고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모하려 하자 이를 만류하다 탄핵당하여 병을 얻은 끝에 남양주 운길산 자락 사제촌(지금의 송촌리) 별서로 와서 생을 마쳤다.

함께 산행한 허경철 박사는 “운길산 등산은 꽤 힘들었다. 그러나 이곳이 한음 이덕형 선생의 유적지임을 알게 됐고, 선생이 대학자이자 문호이며 정치가로서, 공명정대하게 인재를 등용하고 광해군의 폭정에 맞서 항거한 기개와 충정은 혼미한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강옥기 기자 kangokki@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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