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문화행복

미래·경제

복지·환경

국제

시민·사회

생활건강

영상뉴스

사진뉴스

특별취재

SNN칼럼

오피니언

오늘의 건강

여행 & 맛

포토에세이

생활 한자

지구촌산책

한국의 기차역

인물과 역사

디카교실

자연과 야생화

시사 상식

복지관소식

실버넷 만평

전국의 아름다운 길

은퇴 후 자산관리

외국어

기타

확대 l 축소

Carpe Diem in my own way

- 계절 따라 바뀐 모험 장소, 유년의 황금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

Whenever I talk about this sort of topic as mentioned above, it reminds me of "The Adventure of Huckleberry Finn" written by Mark Twain (Samuel L. Clemens, 1895-1910), the American author. This was because I thought that the era of American Realism in the 1830s was similar to that of Korea in the 1950s. 

Accordingly, in those days our parents' generation, adults must have lived the extremely difficult times of life, but on the contrary, it also was the days of a very exciting and risky adventure for us, their children. 

Now immediately after the Korean War, I'm about throwing back to the period of the early 1950s when I was seven to ten years old. My family had moved from the city to Anmyeondo Island, the seat of a township office located on the west coast of South Chungcheong Province, a year before the Korean war broke out.  

My father was a senior executive at ◯◯ bank's headquarters at the time. He, however, volunteered to be transferred to the branch of a secluded island village. That's why it originated from his firm measures to help my mother swiftly recuperate from major surgery at ◯◯◯ university hospital. 

Along with a wonderful and untouched natural setting, the island village surrounded by thick Haesong forests (Antipathes japonica) caught everybody's attention where ever they went. Moreover, by virtue of fresh fish and rich seafood, and the rare herbs that grew naturally here, it was greatly recognized as the best resting place for the rapid recovery of surgical patients even then.  

However, unlike my older sisters, including my brother were in a big city for study and work, I myself and a sister right older than me lived with my parents here in this island. Frankly speaking, she was weak but a model student at school, while I always was a mischievous girl like the black sheep of the family. Accordingly, it was just a question of time before I got on like a house on fire with the country-born children. 

After school, I was keen on playing games such as the elastic cord game, hopscotch, Tom Tiddlers Ground and so on with my peers. But I confess now, I'd ever played hooky without the adults knowing while I was gathering chestnuts and pheasant eggs on the hill behind the school. Sometimes, it was fun to go to the sea and catch oyster, clam and crabs on a rock in the shallow sea. We girls also played soldiers with toy guns on our shoulders together with the boys. 

I was very busy gathering the rosebuds while I may, changing places according to the season like this. 

Since then, on a hot summer day after a rainy spell, I promised to go to the sea for a bath with my friends on the block. And a young nephew of my distant relatives of the same ancestors who'd lived in the neighborhood also wanted to come with us and readily accepted his offer. 

On arrival in the beach, we plunged into the sea to be first. And we lost track of the time while playing in the shallow ocean water by kicking and splashing. We couldn't even sense when the tide rushed towards us on the swelling waves. I wondered how much time had passed. 

At this moment, Oh, shoot! I can't believe it. I couldn't fathom where my little nephew disappeared from my sight. In a flash, a sinister foreboding came into my mind. 

Unfortunately my hunch was right on target. My poor little kid had already drifted far away from where I was. As soon as I saw him pawing the air to get out of the water. 'Halp! Halp!’ I shouted for help. And I hurriedly swam toward my little kid to rescue him from drowning. 

But it was not easy to get near him due to the rushing waves and the deepening sea. We, both of us, were nearly drowned to death. We, however, narrowly escaped death with the help of a woman diver who went deep into the sea to pick abalones. 

By the saving grace of God we, my little nephew and I  were reborn after such ups and downs.


 Park Yoon Ja Reporter yoonp87@silvernetnews.com 


내 방식대로 잡은 눈앞의 호기 
- 계절 따라 바뀐 모험 장소, 유년의 황금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 


위에서 언급한 이런 종류의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 1835-1910)이 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떠오른다. 이는 1830년대 아메리칸 사실주의(Realism) 시대의 모습이 1950년대 한국의 시대상과 비슷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우리의 부모님 세대, 어른들은 매우 힘든 삶의 시대를 살았음이 틀림없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매우 신나고도 위험천만한 모험의 시절이기도 했다. 

이제 6.25 전쟁 직후, 본인의 나이 7-10세쯤이 던 1950년대 초의 시대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우리 가족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에 대도시에서 충남 서해안의 면 소재지였던 안면도로 이사했다. 

당시 ◯◯은행 본사 고위직 간부였던 아버지는 전근을 자청하여 한적한 섬마을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그 무렵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은 엄마의 쾌유를 돕기 위한 가장의 단호한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울창한 해송(海松) 숲으로 둘러싸인 이 섬마을은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싱싱한 생선과 풍부한 해산물,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귀한 약초 덕분에, 이 섬은 그 당시에도 수술 환자들의 빠른 회복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로 꼽혔다. 

하지만 오빠는 물론이고 언니들은 학업과 직장 때문에 도시에서 생활했다. 따라서 바로 위 언니와 막내였던 본인만이 엄마 아빠와 함께 이곳 안면도에서 살았다. 언니는 허약한 몸이었지만 모범생이었던 반면, 본인은 왈가닥이며 말썽꾸러기여서 항상 집안의 골칫덩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이곳 시골 아이들과 금세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방과 후, 또래 애들과 고무줄, 사방치기, 땅따먹기 놀이 등을 하느라 항상 정신이 없었다. 어른들 몰래 수업을 땡땡이치고 학교 뒷산으로 알밤, 꿩알 같은 것을 주우러 간 적도 있었다. 바닷가 얕은 물 속의 바위에 붙어있는 조개, 소라, 게 등을 잡아 오는 재미도 쏠쏠했다. 남자애들과 함께 어깨에 목총(木銃)을 메고 군대놀이도 했다. 

이렇게 계절 따라 장소를 바꾸어 가며 유년 시절에 누릴 수 있는 황금기를 보내느라 무척 바빴다. 
 
장마가 끝난 어느 더운 여름날, 멱 감으러 바닷가에 가기로 동네 애들과 약속했다. 그런데 이웃에 살던 먼 친척뻘의 어린 조카가 따라가고 싶다고 자꾸 졸라대서 큰마음 먹고 그 꼬마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은 서로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얕은 물에서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노느라 불어난 파도를 타고 조수가 밀려 들어오는 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로 이때, 아니, 이럴 수가! 내 조카가 시야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대체 가늠할 수가 없었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직감은 적중했다. 바닷물 속에서 헤어나려고 허우적거리는 조카를 보자마자, “사람 살려 주세요!”라고 외마디 외치고, 겁 없이 조카를 구하기 위해 그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러나 밀려오는 파도와 점점 깊어지는 물길 속에서 그곳 접근이 쉽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익사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전복을 따기 위해 바닷속 깊이 들어갔던 어느 해녀의 도움으로 조카와 함께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신의 은총으로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박윤자 기자 yoonp87@silvernetnews.com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