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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로 국위 선양하다(1)

- 강신철 남창태권도장 관장·세계 태권도태두연맹 총재 -

지난 10월 29일 오후 4시,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옆에 있는 남창도장을 찾았다. 3층 건물 입구에 “강신철 태권도 남창도장”이란 간판이 걸려 있고, 94개국 5000여 명 외국인 방문, 박사 8명 국가대표 코치 7명 양성, 국가대표 선수 10명 배출, 전국대회 & 아시아대회 & 세계대회 금메달 312개, 트로피 173개 수상”이란 현수막이 2층 계단 창밖을 장식하고 있었다.

“강유진 수석 사범 전 세계 품새 메달 최대 보유, 서울대 체육교육과 박사과정, 강형준 수석 사범 전 이란 품새 국가대표 코치, 경희대 태권도학과 졸업”이란 글귀와 사진이 있고, 가운데엔 “관장 강신철 이란 태권도 대부 & 총재”란 글과 멋지게  폼 잡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 위에는 “남창도장”이란 커다란 글씨 아래, 강 관장이 가운데 있고 유단자 선수들이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어 누가 봐도 예사로운 태권도장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했다.

3층 건물 입구에 강신철 태권도 남창도장의 간판이 있다.

양탄자가 고운 거실에 먼저 강 관장의 부인이 차를 내오고 강 단장이 나와서 기자를 맞아주었다. 강신철(63) 관장은 우리나라 10 승지 중 하나인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 떠나 경기도 안양에서 성장했다고 했다.

- 태권도를 언제부터 했으며 태권도를 하게 된 동기는?
“11살 때 외삼촌이 월남전에 파병된 백마부대 태권도 교관이었다. 외삼촌의 영향으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고엽제로 인해 50세에 돌아가셨다.”

강신철 관장이 태권도에 관해서 말하며 차를 마시고 있다.

- 이란에 가게 된 계기는?
“이란에 태권도 감독으로 85년도에 가서 95년도까지, 2005년도부터 8년간 품새 코치로 있었다. 세계대회는 2년마다 하고, 품새대회는 매년 있어서 그때마다 2, 3개월씩 왔다 갔다 했다. 지금은 이란 협회 위원장으로 있다. 86년도 전두환 시절에 아시안 게일에 이란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종합 2위를 했다.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것을 계기로 수원에 체육관을 세웠다.

정조 대왕이 지휘했던 팔달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높은 빌딩이 없어 도장을 세웠다. 팔달구 남창동 지명을 따서 ‘남창도장’이라 했다. 그때 이란은 전쟁 중이었다. 79년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란은 팔레비가 축출되고 호메이니가 들어왔다. 내가 이란에 가기 전에 군사 교관 8명이 가서 가르쳤다. 북한은 후진국에 먼저 국교를 텄는데, 우리나라는 안 텄었다.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에 정부에서 파견한 ‘정파 사범’이 나가야 했다.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에 정부 차원에서 접근할 방법이 태권도밖에 없었다. 파견하는 사람들이 군부, 경찰, 경호실 이런 쪽으로 가게 해서 터를 잡으면 공관을 세우게 했다. 전두환 정부 안기부 시절이었다. 북한은 고급 지역에 있었고, 한국은 후진 곳으로 들어갔다.

김운용(31년생) 대한체육회장, IOC 분과위원장이 71년에 국기원을 건립하고 원장이 되었다. 태권도가 9 개관 위주로 단증을 발행했는데 정리하여 국기원 단증으로 일원화했다. 81년에 60~70개 국가가 회원국이었다. 지금은 219개 회원국이다. 이란에 가게 된 계기는 각 나라의 협회장들이 코치를 원하면 김운용 씨가 각 나라에 배치했다. 실기를 보아 코치를 차출하여 안기부에서 교육했다.


김의배 기자 saesaem@silvernetnews.com
조인원 기자 79choto@silvernetnews.com



공동취재기자:
조인원 기자[79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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