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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로 국위 선양하다(2)

- 강신철 남창태권도장 관장·WTTU 총재 -

1차 뽑히면 대기하고 있다가 어떤 나라에서 코치를 요청하면 보내는데 그때 호주, 홍콩, 이란 등에서 요청이 왔다. 한국인에게 이란은 생소한 때였다. 호주, 홍콩은 이미 다른 코치가 있었고, 이란은 한국 사범이 없었다. 그때 무덕관 총 관장을 지냈던 홍종수 스승이 국기원 부위원장으로 계셨는데 의논드렸더니 물모지에 너만의 태권도를 세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 시절에는 한국인 사범들끼리 서로 반목하는 시기고 전시 중인 나라에 선뜻 나서는 사범도 없었다. 강 관장이 이란을 택하게 된 이유이다.

강신철(왼쪽) 관장이 이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란은 79년 혁명으로 왕정하에 있었던 한국 군소속 교관들은 다 귀국했고, 혁명 후 6년이란 공백기간 후 첫 한국 사범으로 공식 초청받아 내가 들어가데 되었다. 맡은 일은 국가대표 감독으로 대표선수 훈련이었으나 시간 날 때마다 그 당시 ITF 위주의 이란 태권도를 한국의 WTF 태권도로 전환시켜야겠다는 의지로 지도자 양성 교육을 10년간 했다. 그때 양성한 제자들이 현재 이란 전체에 퍼져 국가 산하 시·도 협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도장을 운영한다. 선수로 활동하던 제자들은 국가대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국가 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은 아시아대회를 비롯해 세계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대표 선수 훈련시 태권도의 기술적인 용어는 모두 우리말로 했고, 정신 교육 등 일반적인 소통은 당시 대사관에 근무하며 테헤란대학에 다녔던 아내가 통역을 해 주었다. 

8년간의·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교민이 200명밖에 안 됐고, 국가 상황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선수들간의 원활한 이란 협회장이 한국대사를 찾아가서 한국인 중에 이란어를 제일 잘 가르쳐줄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만난 것이 집사람이다. 대사관 참사 비서로 영어, 이란어에 능통해 TV 라디오를 들으며 이란의 전황을 본국에 전달하는 역할이었던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대사관 근무 시간 끝나면 영사 접견실에서 공부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았던 현지 사정상 여건이 자우롭지 않아 몇 달 이란어 공부를 하다가 프로포즈을 하게 되었고, 86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결혼했다. 서류 계약, 인터뷰 외에 비서 역항를 다 해주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 이란은 어떤 나라인가?
“이란은 팔레비 왕정 시대에서 호메이니가 들어와 이슬람국가, 종교 국가로 체제가 바뀌었다. 이란은 세계에서 유일한 종교 국가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16배이고, 문화는 우리와 비숫해 어른 공경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스승과 선배에 대한 예의를 아는 것도 우리와 흡사하다. 예전과 달리 8년 전장으로 국민성이 피폐해져 경제적 어려움이 많아 각박해졌다.  물질이 궁핍하면 삶의 가치가 흔들린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란’ 하면 사막을 연상하는데 4계절이 뚜렷하다. 테헤란의 상징인 토찰산의 천연 스키장은 아마 세계에서 으뜸일 것이다.

이란은 역사가 깊다. 유럽 정원 건축 형식의 시초가 이란이라 한다. 서구 문화의 원천으로 로마 문화를 꼽는데 이 또한 이란(페르시아)에서 건너간 것이 많다고 한다. 카펫은 이란이 최고다. 양탄자 만드는 장인이 있는데, 장인 네 명이 6개월 동안 짠 것이 저 벽에 걸린 작품이다. 나의 이란 30주년을 기념해 이란 정부에서 나에게 기증하였다. 카펫, 캐비어, 페스타초는 세계에서 최고로 우수하다. 석유는 세계 3위다.”

- 태권도를 하면서 얻은 보람은?
“태권도의 ‘도’란 심신 수련, ‘무’란 겨루기, 올림픽, ‘예’가 있다. ‘도’란 무를 가지고 말하고 ‘도’가 있고, ‘예’가 있는데, ‘도’는 심신 수련입니다. 도교와 정신의 일체가 있죠. 무도장 하는 사람은 싸움을 안 합니다. 무술이 올림픽경기입니다. 무예 쪽으로 들어가면 수원이 무예의 고장입니다. 정조 대왕이 이백 몇십년 전에 무의 24계를 만들었습니다. 24가지 무의 하나가 태권도 동작이 나온다고 합니다.

무예, 칼이나 활쏘기, 말타기, 창 등이 있고, 태권도의 무에는 시범, 공연이 속합니다. 저는 태권도의 세 가지를 다 섭렵해야 사범이 된다고 말하는데, 태권도학과에 4년 동안 다녀도 세 가지의 30%도 못 배웁니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도 국내에서 그 체급에서만 최고지, 태권도에서 최고는 아닙니다. 기왓장을 스무 장 깼다고 강한 게 아니죠. 무도 중에 무술이 제일 귀한 거로 생각하죠.

이란의 거데리 선수가 밴텀급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환호하고 있다.

제가 보람 있었던 것은 이란에 있을 때, 86아시안게임에 8체급 중 5체급만 나가게 됐다. 다섯 명을 데리고 가서 금 1, 은 1개로 종합2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란이 아시안게임에서 최초의 금메달을 딴 쾌거였다. 이때만 해도 이란에서는 태권도가 생소한 때였다. 89년 프랑스 오픈에서 종합우승,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는 4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금 1, 은 2, 동 1개로 종합 2위에 오르면서 태권도가 이란에 확산하고 바람이 부는 계기가 되었다.”



김의배 기자 saesaem@silvernetnews.com
조인원 기자 79choto@silvernetnews.com



공동취재기자:
조인원 기자[79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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