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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병산서원, 한겨울에도 줄 잇는 관광객

- 서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병산서원 -

지난 설날 오후 2시경에 들른 병산서원(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은 가족 단위로 찾는 발길이 분주했다. 서원은 안동시 서남쪽에 위치하며 유명한 하회마을을 돌아 흐르는 낙동강 변의 병산 절벽을 마주하는 조선 중기의 서원이다.

하회마을과 서원은 직선거리는 2km 정도지만 자동차 길로는 5.8km의 거리로 화산(328m)을 돌아서 가야 한다. 아직도 서원 주차장까지 2.1km가 비포장 길이라 질척한 흙탕물과 겨울철 울퉁불퉁 얼어있는 길이지만 차들이 많았다.

설날에도 많은 관광객이 서원을 찾아 입구가 붐빈다.

병산서원도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도산·병산·옥산·도동·남계·무성·필암·돈암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이다.

서원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본관이 풍산(豊山)인 서애는 1564년(명종 19) 사마시를 거쳐 도승지·예조판서·우의정·좌의정 등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시에는 영의정으로 왕을 호종하고, 성곽을 수축하고 화기 제작 등 군비 확충에 힘썼으며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를 양성하기도 하였으나, 1598년(선조 31) 북인들의 탄핵으로 한때 관작을 삭탈 당하고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관광객들이 서원의 중심건물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애는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면서 다시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도학·문장·덕행·글씨 등으로 이름을 떨쳤고 영남 지역 후생들의 추앙을 받았다.

병산서원은 원래 안동 풍산 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 류씨의 교육기관이었으나, 1572년(선조 5) 서애가 현 위치로 옮겨지었고, 1607년(선조 40) 그가 세상을 떠나자 후학들이 1614년(광해군 6) 존덕사(尊德祠)를 세워 서애의 위패를 봉안하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류성룡의 위패를 여강서원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 다시 현 위치로 옮겼으며, 철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다.

가장 큰 건물인 만대루가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서원의 외삼문(外三門)인 복례문(復禮門)에 들어서면 왼쪽에 연못이 있고 건너편에 높은 석축(石築)이 있는데, 석축의 계단을 오르면 큰 누각인 만대루(晩對樓)가 동서로 길게 놓여 있다.

만대루는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고 긴 누각으로 다른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누각이다. 안쪽은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입교당(강당) 좌우로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고직사가 있다.

귀향길에 서원에 네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으면서“역사적 의미나 류성룡의 업적도 감명 깊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인데, 자동차가 돌아드는 출입로가 비포장이라 실망스럽다”고 아쉬워했다.


김익수 기자 kis0317@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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