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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나들이

- 뉴욕에서 터렐의 작품 감상 -

유월 중순부터 말까지 뉴욕을 다녀왔다. 우리는 뉴저지 안 씨네 일가에 짐을 풀었다. 옛말에 “먼 곳에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고 했다. 산업사회로의 붐이 일기 시작한 1970년대 초 신접살림을 함께 시작한 이웃으로 맺은 안 씨네와의 인연은 해를 거듭할수록 끈끈하게 이어졌다.

롤러코스터 타듯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고 오른쪽으로 가는가 하면 다시 왼쪽으로 함께 하는 좋은 인연으로 수십 년을 지내 왔다. 뉴저지의 안주인은 이번에도 한결같이 밝은 마음으로 우리를 기쁘게 맞았다.

작은 호숫가  숲 속에 있는 집 주변은 고라니 토끼 같은 야생동물들이 내 집같이 드나든다. 곰도 종종 얼굴을 내민다고 하기에 뉴저지에 온 선물로 그 녀석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떠나는 날 아침에 “나 여기 있소. 실컷 보시구려” 하며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검은 곰이 나타났다.

어릴 때 갑자기 시커먼 개가 달려들어 혼비백산한 경험이 되살아나 거실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보았건만 순간 내 몸은 감전이라도 된 듯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6월 20일 7시 뉴욕 맨허턴 센트럴파크 주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빛과 공간 예술’의 세계적 거장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미니말 전시가 열렸다.

터렐의 작품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라는 표현이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시각을 통한 지각(知覺)의 반응과 그로 인한 육체적 변화 그리고 더 나아가 영혼의 감흥까지 이어지는 특수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터렐은 퀘이커(Quaker)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교회에 가면 교회 의식에 참여하기보다는 천장을 쳐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돔으로 된 그 천장이 막히지 않고 뻥 뚫렸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뚫린 천장을 통하여 “날아가는 새도 볼 수 있고, 빛나는 태양도 볼 수 있으며 구름도, 푸른 하늘도 그리고 비행기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하는 공상이 그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아버지가 헬리콥터 조종사여서 기계에 관심이 많은 터렐은 비행기 수리와 조종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퀘이커교도는 16세가 성년인데 제임스 터렐은 총기를 소지하는 군 복무 대신 헬리콥터 조종사 봉사를 결심했다.
 
당시 중국의 내정 간섭과 종교 탄압으로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커다란 위기에 처하여 있었다. 터렐은 헬리콥터로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는 저공비행으로 티베트 승려들을 국외로 탈출시키는 작업을 지원했다.

한 번은 승려들을 가득 싣고 월남에서 착륙지점을 찾던 중 적의 포화에 맞아 추락했다. 그는 “비행 중 저격받은 순간만 기억나는데 의식이 들어 깨어보니 한국의 군 병원이었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 한국은 6·25 동란 중 우리나라에 와 있는 미군 부대의 우수한 의료진과 시설이 있어서 월남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으로 후송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울에 있는 수도육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치료 경과가 좋았다.

그 병원에 실려 온 소년병 제임스 터렐은 60년대 초 한국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서울 거리의 군밤 냄새가 그에게는 대표적인 ‘한국의 냄새’라 한다.

한국의 매서운 겨울이 어린 그에게는 가장 혹독한 추억으로 각인되고 병원 뒤뜰 양지바른 곳에서 은밀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부상병과 간호사들의 애잔한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어른거린다고 한다.

이 스토리는 윌리엄 홀덴과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모정’이라는 영화를 연상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리고 애정을 품고 있다.
 
제임스 터렐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중반 슬라이드 프로젝트에서 분사되는 한 줄기 빛을 보는 순간 “사물을 보게 하는 도구로서의 빛이 아니라 빛 자체를 보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 후 학부에서 지각심리학과 천문학을 통하여 ‘빛의 과학’을 연구하고  미술 대학원에서 전공한 ‘색채 감각’을 접목해 오늘의 “빛과 공간 예술”의 세계적 대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물론 퀘이커교도인 할머니께서 늘 그에게 “마음 속 깊은 심연(深淵 )으로 들어가 빛을 만나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빛과 공간 예술’의 바탕에 녹아 있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작품이 관람자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작가가 빚어내는 작품 안에서 느끼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한다.

맨허턴의 구겐하임 미술관, 휴스턴 현대미술관 그리고 LA 카운티 뮤지엄(LACMA) 세 곳에서 동시에 제임스 터렐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LACMA의 갠즈펠드(Ganzfeld)에는 한 번에 십 명 이내의 적은 수가 체험에 참여한다.

네모난 방에 들어가 빛의 변화와 촉감 즉 빛 색깔 변화에 따라 펼쳐지는 아련한 안개 속에 무엇인가 잡힐듯하다 멀어지고 멀어진 것 같으면 다시 나타나는 황홀한 환상 체험을 한다. 터렐의 작품은 “일반 예술 작품같이 그냥 훌쩍 보고 지나가지 말고 전시장마다 차분히 음미하기를 바라며 가능하면 혼자 체험하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고 한다.

아리조나 주 사화산에 40년째 짓고 있는 로덴 크레이터(Roden crater)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 제임스 터렐은 휴스턴에 있는 퀘이커교회 예배당을 비롯하여 전 세계 82개의 Skyspace를 지었다. 우리나라에도 몇 곳 있는 스카이스페이스는 돔 천장을 쳐다보며 누어서 일출과 일몰 때 빛의 오묘함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찬사들이다. “내 영혼이 맑아진 듯 모든 버거움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작품에 빨려 들어가 나의 일상을 잠시 멈추게 하는 기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 너머를 다녀온 듯 차분해지는 마음이 자리 한다”고 했다.


정완호 박사(수필가,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wanho-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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