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문화행복

미래·경제

복지·환경

국제

시민·사회

생활건강

영상뉴스

사진뉴스

특별취재

SNN칼럼

오피니언

오늘의 건강

여행 & 맛

포토에세이

생활 한자

지구촌산책

한국의 기차역

인물과 역사

디카교실

자연과 야생화

시사 상식

실버넷 만평

복지관소식

전국의 아름다운 길

은퇴 후 자산관리

외국어

기타

확대 l 축소

문창호지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보고

- 나를 희망찬 옛날로 회귀시키는 것들 -

나는 거의 매일 으레 안방 문창호지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대한다. 문창호지는 닥나무껍질로 만드는데 질기고 단단하여 찢어지지 않는다. 이 창호지는 햇빛을 흡수하여 고루 확산시키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비 오는 날이나 흐린 날은 예외더라도 창호지에 햇살이 닿으면 방안을 환하게 비춰주는 빛에너지가 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집 밖이건 안이건 해가 비치는 경우라면 어느 곳에서라도 이 문창호지를 통과한 햇살은 그 밝기가 균일하고 조도(照度)가 높아서 나를 안정감 있는 분위기로 안내한다. 나의 경우는 오직 햇살이 문창호지를 지나온 안방에서만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가을이나 겨울 저녁때, 안개 낀 곳을 지나면서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 그 안개는 공기 중에 뽀얗게 물 분자의 분포가 평준하게 되어 있는 상태라, 문창호지를 지나온 햇살의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안개 낀 곳은 구름이나 연기가 있는 곳과는 완연하게 다른 공기 분포를 직감할 수 있다.

안개 낀 곳은 편안하고 아늑한데 우리를 깊숙이 그 속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젊을 때라면 안개 낀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여유롭게 걸으면서 모차르트의 ‘푸릇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 2악장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둑을 두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검은 돌과 하얀 돌로 된 바둑돌은 색은 다르지만,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가진 평등한 돌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시합을 할 때는 바둑알마다 전투에 참여하는 기회는 같지만, 알마다 그 역할은 모두 다르다.

그리하여 어떤 돌은 있으나 마나 한 역할을 하면서 별로 큰일을 못 하지만 어떤 돌은 막중한 역할을 하면서 요석(要石)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돌은 주인이 전투를 잘못하여 죽었는데 나중에 전세(戰勢)가 바뀌어 다시 살아나서 큰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바둑밖에 없다는 말이 회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끊임없는 전투가 이어지는 바둑에서는 아주 기본적으로 누구나 아생연후(我生然後)에 살타(殺他) 즉 내 돌이 산 다음에 상대편 돌을 잡자는 격언부터 익힌다.

바둑계의 맏형으로 있다가 자유한국당으로 간 조훈현 의원은 바둑 둘 때 어떤 철학을 가집니까? 하고 묻는 말에 ‘조이구승자 필다패(躁而求勝者 必多敗) 즉 조급하게 이기려고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대답했다.

철새도래지의 가창오리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고창 동림저수지의 가창오리들이 비행하는 모습은 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장관(壯觀)이다. 작년 겨울 어느 날 저녁, 해 질 녘에 많은 카메라맨이 줄지어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들의 군무비행(群舞飛行) 쇼를 찍으려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임이 틀림없었다.

전 세계 가창오리 떼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고 하니 다른 나라 어느 곳에서도 우리와 같은 군무를 보기는 어려우리라 본다. 어느 사이 그 가창오리 떼의 일부 선두 주자들이 서서히 날아오르기 시작하니까 수많은 오리 떼가 합세하여 한꺼번에 오른쪽으로 쏠렸다 다시 왼쪽으로 쏠렸다 할 때 그 날갯짓이 천둥소리 같이 울린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환상적인 형태의 추상화 그림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가면서 하늘에 그들이 그려 놓는 작품 솜씨가 예술계의 거장인 고흐나 피카소의 재능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또 다른 한 부류는 어느 날 TV에서 보여 준 바닷속 참 다랑어들의 군무 또한 가창오리 떼만큼이나 아름다운 율동이 수반함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참 다랑어들이 서로 부딪치는 사고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먼 거리를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 갈 수가 있다니!’ 하는 감탄이 뒤따른다.

참 다랑어들은 위치를 서로 바꾸어 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양한 군무를 하는데 상어들이 참 다랑어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을  돌고래가 일부 호위하고 다닌다고 한다.

문창호지 매력에 빠진 나는 안방에 아침 햇살이 비칠 때면 책을 꺼내 든다. 그러한 날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을 들어 펼치면 책 속의 내용이 저절로 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문창호지 햇살이 편안한 세상이라고 느껴지는 안방의 분위기는 내가 갖는 최상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그때 나는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 하는 초등학교 때 부르던 노래 가사가 내 머릿속을 압도하면서 나를 옛날로 회귀시킨다.


정완호 박사(수필가,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wanho-chung@hanmail.net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