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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스승의 길

- 30년 만에 제자를 만나다 -

현관에 들어서니 아내가 초대장을 건네준다. '선생님 꼭 오셔야 해요' 겉면의 빨간 댓글이 먼저 반긴다. 초등학교 졸업 삼십 주년 기념동창회를 열겠으니 참석해달라는 제자들의 당부 글이다. 나는 단 걸음으로 세월을 거슬러 올랐다. 화단에는 채송화 봉숭아도 보이고 운동장 뒤뜰에서는 아이들이 고무줄놀이하고 있었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부러움으로 즐겨보던 때였다. 그러기에 오늘의 초대는 그에 버금가는 영광된 자리라고 생각되었다. 기다림의 날은 왔다. 뛰는 가슴을 겨우겨우 누르며 설렘으로 교문에 들어서자 예서 제서 우르르 날아온다. 마치 참새떼인 양···.

"선생님! 저 아시겠어요? 아무개입니다. 학교 공부는 못 했지만, 그간 사회 공부는 열심히 했지요. 안 해본 일 없이 해보니 이제는 공부 일등짜리 부럽지 않아요.” 코흘리개 열등생이었던 자기가 제법 알만한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다며 그간의 삶의 여정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제가 선생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왜냐고요? 5학년까지 만났던 선생님들한테 무척 혼나고 맞았습니다. 그래서 중간치 기를 많이 했지만 6학년이 되어서 선생님만은 그러지 않으셨거든요"  좀 더 관심을 가져주지 못함이 폐부를 찌른다.

한편,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회사 과장이 되었다는 제자 鄭 아무개는 “선생님! 저는 청소 잘못했다고 볼기를 다섯 대 맞았어요, 아시죠?" 하며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쏟아낸다. 다행히 그 아픔을 채찍으로 삼았다 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암! 알고 말고, 많이 아팠지? 나도 돌아서서 많이 아파했단다.”

이처럼 삼십 년이란 세월은 개구쟁이를 갓 넘긴 동안(童顔 )의 소년 소녀를 자랑스러운 사회의 중견 인물로 바꾸어 놓았다. 뭉뚝 잘려 나간 세월 양 끝에 마주 서니 그간의 삶이 무척 궁금하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여 어느 날 당당히 나타난 그들의 장한 모습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치 이들을 키우기나 한 부모인 것처럼···.

이어 순서에 따라 정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 시간을 오래도록 작정하고 기다려 왔다. 이들 중 누군가? 나로 인하여 아픔을 당하였다면 그에게 달려가 용서를 빈다고 다짐하였다. 그러기에 오늘 나는 그들 앞에 단두대 위에 선 중죄인(重罪人)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미완성이었지만 나 역시 선생님으로서 미완성이었습니다. 초년 교사로서 나름대로 ‘교육이란 이런 것 아니겠는가? 교육자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며 나도 페스탈로치가 되어보겠다고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돌아보니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 때문에 지금까지 아픈 상처를 가지고 살아온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여러분의 삶이 더욱 빛났을 것이기에 나의 앎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했음에 열정을 다하지 못했음에, 좀 더 다가가 안아주지 못했음에 용서를 구합니다.

종아리를 걷었으니 호되게 쳐주길 바랍니다. 이제 내가 맞아야 할 차례입니다.” 진심으로 용서를 바랐다. 잠시 사제(師弟)의 길을 넘나든 회억(回憶)의 자리였지만, 모처럼 화기애애한 자리를 숙연하게 몰아간 것 같아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어서 다과 시간은 반별로 이루어졌다. 여학생들이 먼저 달려와 팔짱을 끼고 당긴다.

“선생님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선생님과의 인연을 얼마나 감사했는데요.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를 많이 부러워했어요. 그런 학생 전혀 없을 거예요” 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맞을 매를 맞은 듯 참으로 홀가분했다. 상처를 받은 제자가 혹여 있다면 작은 위로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간 짓누르던 가슴 돌을 잠시 내려놓고 펑펑 울고 난 심정이랄까? 멀고 먼 참스승의 길이 조금씩 열려 보인다. 내 다시 교단에 선다면 조금 나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선생님!’
‘까르르’

제자들의 앳된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慧山 류준식 시인(전 초등학교 교장, 현 익산신문 집필위원) ryu02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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