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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전반기의 추억

- 정년 후 10년의 세월은 내 인생의 황금기 -

2013년 새해 광화문 교보빌딩에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렸었다. 신선함이 밀려왔던 일 년 전의 글귀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하늘을 나는 황새도, 땅 위를 달리는 말도,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도, 각기 다른 방법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움직이는 모양과 달리는 속도는 달라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예게 삶의 희망을 가져다주는 격려로 느껴졌다.
 
나이 들면서 건강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은 나만이 갖는 생활 태도는 아니리라. 몸이 부분적으로 아픈 곳이 있더라도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한해를 뒤돌아보며 내게 있었던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되씹어 보기로 한다.
 
본인은 2011년 건강검진을 하는 길에 대장 내시경을 처음으로 하였다. 그 당시 용종이 몇 개 있어서 그것을 제거하였다. 2012년에 다시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하는데 감기가 심하여 기회를 놓쳤다.

그리하여 2013년 실시한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는 암으로 판정되는 제법 큰 용종을 제거하면서 본인은 대장암 환자로 등록이 되었다. 등록된 암 환자라는 것이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내가 그것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정년을 맞이한 후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 감상을 여러 해 수강하다가 지금은 거리가 가까운 분당의 성남아트센터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종전에는 내가 선호하는 음악만 듣는 편식 위주의 감상을 하다가 강의를 들으면서 이제는 조금씩 편식 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경우더라도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가장 큰 즐거움이다. 특히 오케스트라 구성원들의 악기 위치를 보며 음악을 듣는 것은 오디오로 듣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보에와 클라리넷을 구별하는 것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구별하기보다는 쉽지 않다.

거기에 알토 클라리넷이란 것까지 가세하면 더욱 복잡하다. 바이올린보다 비올라가 조금 크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지금도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프렌치 혼은 흔히 볼 수 있으나 잉글리시 혼은 그리 흔히 볼 수 없다. 그리고 바순의 이름은 파곳이라는 또 다른 이름과 함께 그리 쉽게 익혀지지 않는다. 트럼펫은 트롬본보다 소리가 경쾌하면서 고음의 소리가 제격이다.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억울하게 죽은 친구 프랭크 시나트라를 생각하며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트럼펫을 한 손으로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진혼곡을 부는 장면은 지금도 짜릿한 여운으로 남는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미술 시간에 7가지 색깔 크레용을 사용하는 학생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 그 당시 미술 교육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미적 감각을 논하는 것은 거지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 있다.

긴 세월 아름다움의 굴레에서 멀리만 있다가 은퇴한 이후에는 의식적으로 많은 전시회 즉 회화, 사진, 조각, 설치미술 등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곳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4년 3월 말까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에서는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계의 대가를 만날 기회도 있었다.
 
그해 6월에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다녀왔다. ‘빛과 공간의 예술작가 제임스 터렐’의 회고전이 있었다. 그는 대학 때 슬라이드 프로젝트에서 분사되는 한 줄기 빛을 보는 순간 ‘사물을 보게 하는 도구로서의 빛이 아니라 빛 그 자체를 보게 할 수는 없을까?’하는 의문의 해결사로서 빛의 과학에 색채감각을 접목해 ‘빛과 공간 예술’의 세계적 대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본다.
 
정년퇴임 후에 서울 근교의 산은 거의 한 번씩은 올라 보았는데 멀리 있는 지리산은 정상을 올라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11월 4일과 5일에 걸쳐 지리산을 친구들과 함께 올라 보았다. 이미 2년 전에 1박 2일로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거쳐 피아골로 내려가는 험한 길을 다녀왔고 1년 전에는 1박 2일로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지나 아름답기로 이름난 남원 쪽 뱀사골로 내려왔다.

지리산은 한 번에 종주하는 것이 어려워 2013년에는 앞서 다녀온 것으로부터 이어 종주한다는 의미에서 함양의 백무동으로부터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대피소를 지나 연하봉을 넘어 장터목 대피소에서 일박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가 주먹만큼 크게 보이는데 국어 시간에 배운 농가월령가의 ‘북두칠성 자루 돌아 서편을 가리키니······ ’ 하는 구절이 불현듯 생각나서 초저녁때 북극성을 중심으로 왼쪽에 북두칠성이, 오른쪽에 카시오페아가 있었는데 새벽에는 오른쪽과 왼쪽의 별자리가 바뀜을 생전 처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그 기쁨이 크게 다가왔다.

새벽 6시 50분 일출을 보기 위해 5시 30분에 등반을 시작하여 여유롭게 천왕봉 꼭대기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였다. 깜깜한 밤에 앞사람의 서치라이트를 공유하면서 험한 지리산 길을 오르는 묘미는 지금도 짜릿한 기억으로 남는다.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데 내가 서 있는 지리산 정상 표지석 앞면에는 ‘天王峰’, 뒷면에는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쓰여 있는 글의 함의(含意)가 유난히 내게 힘 있게 다가왔다.
 
11월 말경 5일간 과학탐구올림픽대회 우수 학생들과 홍콩에 다녀왔다. 홍콩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는데 본관 건물 앞에 붉은색 조각 ‘비상하는 학’을 멋지게 제작해 놓은 것을 보면서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 앞에 멈추었다. 

그것은 홍콩과기대가 마치 요즈음 이공계 대학 평가에서 계속 상승하는 세계 최고 명문대로의 위상과 무관치 않은 인상을 주었다. 또 구룡진광중학(九龍眞光中學)에 들렀다. 학교 이름을 보면서 나는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했다. 진광은 태양 빛을 의미한다.

태양의 진짜 빛은 번쩍거리지 않으며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먼지가 많은 방이나 물 분자가 많은 숲 속에서는 먼지와 물 분자에 햇빛이 반사되어 그것이 직선으로 지나가는 것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사람도 실력 있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태양 빛과 같이 잘난 체하지 않고 언제나 무게 있게 행동하고 품위 있게 대화한다. 깡통에 내용물이 가득 차 있으면 소리가 나지 않고 조금 들어 있으면 시끄러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역시 진광중학은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는 명문교 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완호 박사(수필가,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wanho-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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