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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인생 영화, ‘THE JOURNEY’

- 그 시절의 로망, 율 브리너의 강렬한 사랑 -
코로나로 인해 2월부터 모든 일상이 갑자기 정지해 버렸다. 금방 끝날 줄만 알았던 그 사태는 계속 이어지면서 평범했던 우리의 삶을 확  바꿔버렸다.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일상을 그리워하며 홀로 산에 오르거나 노트북으로 흘러간 영화를 보면서 지냈다.

오늘도 노트북으로 추억의 영화를 이어 보다가 운 좋은 일이 생겼다. 짧은 영상이라도 있을까 애타게 찾던 영화‘여로, THE JOURNEY’의 절정 장면 동영상을 발견한 것이다. 반복 시청하며 글로 소감도 써놓고 한참 후에 다시 그 영상을 찾아보니 웬일인지 그새 모든 기록에서 지워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70년대 토요일 밤늦은 시각, 흑백 TV 앞에 앉아 사람들은 인기 프로였던 주말의 명화를 시청했다. 지금의 6, 70대 실버들이 그때 흘러간 영화를 많이 본 세대다. 주로 외화였던 많은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바로‘여로, THE JOURNEY’다. 러시아 출신 감독 아나톨 리트바크의 1959년 영화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율 브리너와 데보라 커 주연의 '여로'는 1956년 11월 헝가리 국경에서 일어난 사건이 주된 줄거리다. 러시아의 지나친 내정간섭에 헝가리에서 반란이 일어나 소련(러시아)군이 진압을 위해 부다페스트에 주둔한다. 주둔군 소령 율 브린너와 이국의 아름다운 여인 "데보라 커“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반란군 헨리 플레밍이 총상을 입어 잡힐 위기에 처하자, 전 연인이었던 다이애나 애쉬모어(데보라 커)는 부부로 위장해 인근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그를 도피시킬 계획을 세운다. 헝가리에 거주하고 있던 다른 외국인들도 전란을 피해 출국 러시를 이루는데 공항이 폐쇄되자 단체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으려고 특별 허락을 받는다. 

외국인 출국자들 속에 섞여 다이애나는 플레밍을 부축해 버스 맨 뒷자리에 오르고, 버스는 국경을 향해 출발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의 한 시간 정도 거리가 기나긴 여정으로 돼버리는 과정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도중에 버스를 검문해서 여행객들을 체포한 소련군 장교 역 "율 브리너" 의 다이애나를 향한 불꽃 같은 사랑 때문이다.
 
소련군 장교 역의 율 브리너는 첫눈에 반한 그녀를 보내기 싫어서 갖은 이유로 여행객들을 잡아 둔다. 조사를 핑계로 식사를 하면서 그녀를 개인적으로 자주 불러 호의도 베푼다. 한시바삐 부다페스트를 뜨고 싶은 여행객들은 날이 갈수록 초조해져서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며 그녀에게 눈치를 준다. 

결국 그녀는 마을로 나가서 뒷돈을 주고 배를 이용해 둘이 밤중에 강을 건너 도피하지만 결국 소령에게 다시 붙잡히면서 위장 신분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한다. 사건에 대한 상부 보고와 처리를 핑계로 출발이 계속 지연되자 여행객들은 소령의 숙소로 밤에 찾아가라고 그녀를 재촉한다. 

고심하던 그녀는 결국 소령의 숙소로 찾아가“다른 여행객들이 가라고 해서 왔어요. 제발 보내 주세요”라고 말한다. 이에 소령은 유리컵을 한 손으로 으스러뜨리며 “거짓말이오, 당신도 나한테 오고 싶었잖소? 밤마다 당신을 기다렸소”라고 고백하며 둘이 키스하는 짜릿한 장면이 영화의 절정이다. 

검은 가죽점퍼가 잘 어울리는 특유의 카리스마에 대머리의 아이콘, 배우 율 브리너의 독특한 개성이 강하게 부각된 영화다. 부리부리한 눈매, 화면을 뚫고 나올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악역으로 많이 등장했지만, 그는 눈빛 속에 감춘 뜨거운 가슴을 멜로로 승화시킬 줄 아는 배우였다. 

러시아인 특유의 깊고 우수 어린 눈, 웃을 때마다 순수함이 엿보이는 박력의 배우 율 브리너에 압도된 여자들은 모두 데보라 커가 되어 가슴 설렌다. 우아한 지성미의 아름다운 데보라 커와 터프한 매력의 율 브리너가 너무 잘 어울려서 영화는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비슷한 시기의 영화 ‘왕과 나’에서도 두 주인공은 카리스마와 우아함의 대명사로, 환상의 케미로 그 시대의 로맨스를 리드했다.

다음 날 아침 여행객들은 소령의 호위로 버스에 오르고 오스트리아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전날 밤 키스를 하면서 여자의 마음을 알게 된 소령이 사랑하는 여인 다이애나를 위해 일행을 보내 주는 것이다. 국경을 넘기 직전 둘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요?” 
“그럴 필요 없소. 날 위해서 그런 거요. 나도 편히 자고 싶어서....“ 

데보라 커와 일행이 무사히 국경을 건너간 뒤 허탈한 표정으로 차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고 난 그가 운전석에 앉을 때 헝가리 반란군의 총알이 날아오고 그는 쓰러진다. 

이 엔딩 장면이 너무 가슴 쓰리고 아파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전란 속에서 우연히 만나 운명 같이 타오른 뜨거운 사랑, 그 짧은 사랑의 대가로 허망하게 죽음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남자의 모습에 영화를 보던 관객들의 애끓던 가슴도 함께 저격당한다.

갑돌이와 갑순이식의 로맨스 잔재가 아직 남아있던 그 시절, 구시대적인 사랑 방식에 식상한 당시 여성들에게 율 브린너의 박력 넘치는 강렬한 시선과 애틋한 사랑은 그야말로 그 시대 여성들의 로망이었다.


윤명옥 기자 mnoloo23@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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