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은 인간을 치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가을의 상징이 유난히 짙은 8일 오후, 우리 일행도 자동차로 우이동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정차한 후 단풍으로 곱게 물든 총 길이 4.46㎞의 우이령(牛耳嶺) 길을 갈 수 있는데 까지라도 걸어 보고 지치면 먹자 거리로 내려오자며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우이령 길은 맨발체험도 가능하며, 노약자 모두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로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연결하는 길이며 북쪽의 도봉산과 남쪽의 북한산의 경계인 우이령(쇠귀 고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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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기 사회복무원이 등산객을 선별 통제하고 있다. |
그런데 산책 중반에 문제가 생겼다. 우이동 경전철 역에서 약 1, 5km 거리를 걸어 도착하면 ‘북한산성 탐방 지원센터’ 초소가 있는데 일단 검열 정지 명령으로 김혁기(23) 사회복무요원의 안전지시를 따라야 했다. 우이령을 넘으려면 하루 전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며, 여러 사정에 대해 자상한 안내를 했다.
김 씨가 안내 책자를 건넸다. 우이령은 소의 귀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에서 ‘쇠귀 고개’ 즉 우이령(牛耳嶺)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오봉과 상장봉 사이에 있는 이 쇠귀 고개를 아래 응달 말에서 올려다보면 두 봉우리가 마치 소의 귀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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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산이 쇠귀를 닮았다는 우이령이다. |
6·25 전쟁 이전의 우이령 길은 양주와 서울을 연결하는 소로였으나 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 도로로 만들면서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양주와 파주 지역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서 피난을 갔다고 한다. 지금도 고갯마루에는 냉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탱크 저지용 장애물이 놓여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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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1967년 10월 준공된 우이령길은 한북정맥의 끝자락에 있으며, 북한산과 도봉산을 나누는 고갯길이다. 또한, 1968년 1·21 사태‘청와대 기습을 목적으로 한 간첩 침투 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이령 길은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양주 시민에게는 지난 40년간 막힌 길이었으나 2009년 7월부터 일반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우이령길을 생태 탐방로로 복원하여 하루 1,000명만 이용할 수 있는 예약 탐방제로 제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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