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지속하던 강추위가 풀리고 낮부터 하늘이 흐렸다. 오후 4시경부터 급기야 많은 눈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내리던 눈은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폭설로 변하고, 갑자기 온 천지가 어두워졌다. 멀리 보이는 큰길의 자동차들이 라이트를 켠 채 거북이걸음을 시작했다. 건너편 지붕들과 아파트 광장에 눈이 쌓이면서,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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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경비 아저씨들은 눈을 치우고 있다. |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들에 온통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광장에는 화요 시장이 열려서 천막 상가들이 전등불을 밝힌 채 손님을 끌고 있다. 스피커에선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럽습니다. 외출 시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현관 앞부터 주차장까지 어느새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지난번에 내렸던 새해 첫눈은 밤늦게 몰래 왔고, 아침엔 날씨가 너무 추워 광장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아침엔 땅 위에 쌓인 눈만 있고, 주변 나무위의 눈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늘은 날씨도 풀리고, 낮에 펄펄 내리는 많은 눈발에 아이들이 열광했다. 한 시간도 안돼 흰 눈은 온 동네를 덮어 버린다. 경비 아저씨들은 부지런히 긴 빗자루로 눈을 쓸고 가래 로 밀면서 쌓인 눈 사이로 길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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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 아이들이 눈밭에서 놀다가 눈 위에 벌렁 누워 있다. |
광장엔 눈꽃 세상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다.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나와서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눈 내리는 세상이 즐거운 꼬맹이들은 아파트 단지 소나무 동산 위에 올라가서 눈밭 위에 드러눕기도 한다. 아이들의 눈 온 날 추억을 남기고자 사진 찍는 엄마들도 즐겁기만 하다. 한쪽에선 어느새 고학년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눈싸움을 하려는지 떠들썩하다.
손주와 함께 제일 먼저 눈사람을 완성한 할머니는 꽃밭 옆에 눈사람을 세워놓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여기저기서 엄마와 함께 나온 아이들이 경쟁하듯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통에 목줄을 든 주인들도 덩달아 쫓아다니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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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가게에서 사람들이 먹을 것을 사 들고 나오고 있다. |
돈가스, 치킨, 떡볶이와 튀김 등을 파는 천막 가게들은 손님이 많아져서 불을 환하게 밝혀 놓고 있다. 생선 천막은 어느새 많은 좌판을 다 걷어 트럭에 싣고, 길이 얼까 봐 어둡기 전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옆의 과일, 채소 가게 주인들도 떠날 채비를 서두르며 생선가게 아저씨의 부지런함에 감탄사를 날리며 귀갓길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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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세상에서 노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
아래층 할머니가 복도에 나와 광장 풍경을 내다보다 걱정스럽게 묻는다. “밤엔 길이 얼겠지요? 눈이 오니까 옛 생각이 나네요. 아이들은 정말 신났네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저녁 눈길에 귀가할 가족을 걱정하던 노인은 광장의 눈꽃 세상을 내다보며 젊은 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겨울날의 저녁 해는 빠르게 서쪽으로 넘어가고 동네 아파트 단지에 이내 어둠이 내린다. 야외 주차장에 가득 늘어선 자동차들은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채,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윤명옥 기자 mnoloo23@silver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