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 남이 장군 기념관
  • -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충무사(忠武祠) -
  • 지난 2일 오후, 화창한 봄날 남이 장군의 사당을 찾았다.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에 충무공(忠武公) 남이 장군 기념관(충무사)이 있다. 남이 장군은 소간공(昭簡公) 남휘(의령 남씨)와 정선공주(태종의 4녀)의 손자다. 이곳 구산리는 남휘의 후손들이 자리 잡은 의령남씨의 집성촌이고 정선공주와 남휘의 묘가 있다.

    공주와 부마의 묘
    정선공주와 부마(남휘)의 묘역이 잘 단장돼 있다.

    원래 남휘의 묘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장서리, 정선공주의 묘는 평택시 진위면 동천리에 있었는데, 1974년에 후손들이 이곳으로 이장했다. 장군의 기념관은 의령 남씨 문중에서 이곳 조부모의 묘 옆에 2018년 4월에 준공했다. 한편 장군의 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다.

    남이는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했다. 세조 13년 25세에 이시애의 난 평정에 선전관으로 출정해 공을 세우고, 같은 해 9월에 건주위(여진) 정벌군 우상 대장으로 출정해 압록강을 건넜다.

    세조 14년 8월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9월 세조 승하 후 10월 27일 유자광의 무고로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중종 13년‘동각잡기’,광해군 4년‘하담록’,정조 21년‘일득록’ 등에 유자광의 무고로 억울하게 죽은 명장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순조 18년 영의정 남공철의 상소로 신원 됐고, 1910년(순종 3년) 충무공 시호를 받았다.

    충무사 앞의 기마상이 돋보인다
    충무사 앞의 청동 기마상이 돋보인다.

    장군이 건주위 정벌 후 백두산 초입에서 남긴, 역모의 원인이 된 시는 다음과 같다.

    白頭山石磨刀盡 : 백두산의 돌은 칼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 : 두만강의 물은 말 먹여 없애리 南兒二十未平國 :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리오.

    몇 년 전에 이곳을 지나면서 못 본 것 같은데 최근에 만든 것 같다는 말에 구산리 주민 남 씨는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 늦게나마 신원이 회복되어 다행입니다. 기념관을 만든 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외지인은 잘 모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언칠 기자 eonchil@silvernetnews.com

  • 글쓴날 : [21-04-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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