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임선 / 등록일시 : 2019-09-05 22:03:39 / 조회수 : 22
제목 이지선 여행기- 아픔의 땅 아프리카에 가다 789
첨부파일
내용

이지선 여행기- 아픔의 땅 아프리카에 가다 7
   - 세계 7대 자연경관 테이블마운틴


세계 7대 자연경관인 테이블마운틴은 시내에 있다. 우리의 남산 같은 위치다.

1069m의 높이다. 보기에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이는데 아마도 지형이 높아서일 것이다. 바닷가 옆이라서인지 바람이 많이 불어 파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프리카 하면 덥고 사막이고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사람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것은 적도 근처에 있는 나라이고 이곳은 남쪽이라 기후가 우리와 비슷하다.

가볍게 입었던 옷이라 추웠다. 더욱이나 산 위에는 지상과 5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두꺼운 무릎덮개를 비상으로 가지고 다니는데 이런 때 유용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케이블카를 타려고 줄을 서 있다. 바다와 시내와 산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60명 이상이 탈 수 있는 케이블카는 360도 회전한다. 줄 서 있는 입구에 이곳이 7대 경관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우리나라 제주도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보는 순간 어깨가 으슥했다. 주변에 있는 외국인들한테 우리가 여기 코리아에서 왔다고 서투른 영어로 자랑 했다. 몇 년 전에 7대 자연경관 속에 들어가야 하는 투표에 열심히 참여 했던 애국적인 사람들의 결과라고 할까. 전화를 독려하고 투표로 인한 관의 개입으로 잡음이 많았던 걸 기억하자면 깨끗한 뒷맛은 아니지만 지도에 쓰인 것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산 정산이 식탁처럼 납작해 테이블마운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산은 바다가 솟구쳐 산이 된 경우라 소금기가 많아서인지 나무들이 없다. 주름진 곱창 같다. 색도 그렇고 모양새도 회색이고 절벽이라서 등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지하자원 대신 지상은 색색으로 바꾸어지는 우리네 산은 계절마다 아름답다.

산과, 바람과, 바다, 시내가 어우러진 산은 그대로 장관이다. 작은 나무들만 돌 틈 사이에 끼어 있다. 그곳에도 식물들은 나름의 번식에 열중이라 노랑꽃 보라색의 꽃들을 피웠다. 열정적으로 화려한 것은, 선인장 종류의 알로에 비슷한 식물에서 핀 빨간색의 커다란 꽃이다. 가시가 많이 달린 보잘것없는 잎에서 이처럼의 화려한 꽃을 피운다는 게 나를 흥분시켰다. 잎이 아름답다고 꽃까지 아름다운 건 아니다. 생명은 살아갈 한 가지의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나오는가 보다. 나는 이 중에 어느 과에 속하나 잠시 생각해 본다. 그러다 과연 꽃을 피워보기는 했는가 하고 자문해 보기도 했다.

날개에 붉은빛을 띤 검은 새는 깃털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번들거린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람한테 혼이 나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흑인 연인이 별러서 이곳에 올라왔나 보다. 남자가 여자 사진을 찍더니 지나가는 나를 붙잡았다. 같이 찍어 달라고 한다. 그래 이 얼굴 국제적으로 팔린들 누가 알아보기나 하겠나. 얼굴을 빌려주었다. 이번에는 황공하게도 젊은 남자가 나하고 찍겠다고 해 다정스레 웃어 주었다. 동양인들을 자주 만날 기회가 없는 그들의 눈에는 노란 얼굴이 유별나 보였으리라.

흑인, 백인, 황인이 다양한 모습과 차림으로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모습이 국제적이라는 게 실감났다.   
     


이지선 여행기- 아픔의 땅 아프리카에 가다 8
        -다시마 전복이 먹지 않아 지천이다



땅값과 집값이 세계적이라는 휴양지의 해변 가 캠 스웨이는 12개의 봉우리가 펼쳐 있는 한적한 해변이다. 물도 깨끗하고 경관도 좋은데 사람들은 없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12개의 산을 12사도 봉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기야 산봉우리가 나란히 12개가 있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기에. 그 산맥이 90km나 된다니 역시 넓은 나라다. 이곳의 부동산 값도 돈 있는 중동의 부호들이 마구잡이로 사고 마돈나도 여기에 별장이 있다고 하니 값이 자꾸만 오른다고 한다. 없는 사람은 천막을 치고 사는 데 있는 사람은 호화주택을 사 놓고 쓰지도 않고 비워 둔 채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린다니 은근히 화가 난다. 방 하나 작은 원룸이 우리 돈 7억이나 간다는 게 실감이 안가지만 우리의 서울도 그렇지 않은가.

바닷가 해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물속에 물새가 떼 지어 파도를 따라 들락이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다. 가는 곳 마다 그렇다. 무언가 물어보았더니 그게 다시마란다. 여기 사람들은 다시마를 먹지 않아 그대로 둔다고 한다. 먹을 줄 아는 다른 사람이라도 
가져가게 하면 좋으련만 이 정부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허가된 곳 이외는 바닷가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벌금을 많이 물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마를 먹고 사는 전복도 먹지 않아 그대로 놔둔다. 몇 년씩 크고 있는 전복은 내 얼굴보다 크다. 전복이 그처럼 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전복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중국 사람들이 이것을 그냥 놔 둘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달걀도 인공으로 만드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전복을 몰래 채취해 말려서 컨테이너에 실어 밀반출하려다 붙잡혀 호되게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아마 이 나라도 이게 돈이 된다는 것을 알면 우리나라까지 수출할지도 모르겠다. 양식만 보아온 다시마와 전복의 선입견을 버린 건 그 실체를 보고 나서다. 다시마의 뿌리는 마치 타이어 튜브처럼 속이 비어있다. 4-5m 이상의 뿌리는 타이어 고무처럼 딱딱하고 무겁다. 땅에 뿌리를 박고 비어있는 공기통이 물 위에 뜨면 그 끝에 다시마가 붙어있다. 온통 바닷가가 다시마로 가득하다. 부럽다.

이 나라도 우리처럼 단순한 민족이 아니다 보니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용어는 영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쓰이는 말은 부족에 따라 지역에 따라 11개가 있다고 하니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가면 3가지의 말과 글을 배워야 한다. 글은 없는 부족이 많지만 토속어의 말은 각각이 달라서 몇 개의 말은 정식으로 배운다고 한다. 이런 때 보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케이프타운의 밤 야경은 화려했다. 더욱이나 동구란 월드컵 경기장의 모습은 멋졌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참여하지 못했는데 북한이 포르투갈과 경기에 7:0으로 완패를 한 곳이다. 완패한 선수들이 탄광에 끌려갔다는 후일담도 들렸다. 자존심 많이 상하는 골 차이다. 미운 형제지만 이겼다면 더 좋았을걸.

낯보다 밤의 풍경이 아름다운 건 지저분한 것들이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선을 볼 때 희미한 불빛이 있는 다방에서 보았나 보다.
   
 
  
이지선 여행기- 아픔의 땅 아프리카에 가다 9
        -27년을 감옥에서 지낸 만델라 대통령
 


우리와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별 놀이 문화가 없어 가족끼리 대형 쇼핑센터에서 구경 겸 시장을 보는 게 일상화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 젊은이들의 문화도 점점 그렇게 닮아가는 듯하다. 문화가 발전할수록 남자들의 힘이 약해지고 부드러운 것에 더 가까워지는 듯하다. 쇼핑몰은 컸지만 내가 필요한 물건은 없어 아이쇼핑만 했다.

바닷가 옆이라 산책하고 운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대부분 백인들이다. 흑인들은 이런 마을에 살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다. 감옥이란다. 섬에 감옥을 두는 건 정부 당국으로 보기엔 악질적인 죄수들이다. 백인 정부 때 만델라 대통령도 여기에 18년 동안 투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27년 동안의 감옥 생활을 했다니 억울할 만도 하다. 흑인의 인권과 독립을 위해 무저항 운동을 했던 것인데 백인들의 법에는 반역이었다. 참 염치없는 흰둥이다. 로빈 아일랜드 섬은 가까운  듯하지만 탈옥하기 어려운 곳이란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악어들이 많아서 탈옥을 못한다고 한다.

양심과 법과 인간의 욕망은 과연 어디가 기준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혼자 여행할 때는 나와 같이 한방을 써야 하는 룸메이트가 궁금하다. 어느 때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도 있다. 며칠 동안 한방에서 지내야 하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거나 성격이 유별나면 여행의 기쁨도 감흥도 잃기 쉽다. 다행히 그동안에는 힘든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다. 하기야 나도 독특한 사람은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서로 잘 지내는 편이다. 호텔에 들어가 인솔자가 방을 배정해 주기 전에는 누구인지 모른다. 대략은 혼자 온 사람들끼리 맺어지기는 하지만. 나와 같이 방을 배정 받은 사람은 나와 갑장이다. 처음부터 눈길이 간 사람이다. 나도 다니는 곳마다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핸드폰과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그녀도 그런 모습이라서 관심이 갔다. 방에 들어와 호적 조회를 해 본 결과 내가 생일이 한 달 빨랐다. 얘기를 해 보니 수필집을 두 권이나 낸 수필가이고 교직으로 정년을 한 사람이라 반가웠다. 지금도 인터넷 실버 뉴스 기자로 활동하기에 메모와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뜻과 지향과 살아온 점이나 삶의 방향이 비슷해 오랜 동료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서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라며 금세 친해졌다.

호텔과 식사는 기대 이상이다. 고생하러 아프리카에 가느냐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고생 좀 해야지 했다. 그러나 백인들이 경제를 운영하던 곳이라 모두 서양식으로 잘 되어있다. 호텔 조식은 오히려 유럽보다 잘 나왔다.

아침에 일행들이 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서서 일정을 설명하던 왕 서방 가이드가 나뒹굴었다. 중국사람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서다. 다행히 살집이 많은 가이드는 뼈에 이상은 없지만 몸에 멍이 들었다. 여기는 보험이 미국식이라서 병원에 가면 돈이 엄청 많이 든다고 한다. 그러기에 어지간하면 그냥 참는다고 한다. 차만 타면 인솔자가 안전벨트를 강요하는 바람에 일행은 괜찮았다. 



이지선 시인 문단약력

1998년 문학세계 시 등단, 한국 문인협회회원, 시향문학회회원, 문인협회 시흥지부 회원, 자치신문 칼럼위원, 시흥시 효도회 집필위원, 시집 -배낭에 꽃씨를. 부부시집 -내생에 봄이 다시 온다면 외 5, 에세이집 -아름다운 이별. 메일 :jisn50@hanmail.net


리스트가기 
이전 게시물 :  이지선 여행기- 아픔의 땅 아프리카에 가다 10
다음 게시물 :  나도 노인이구나/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