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임선 / 등록일시 : 2019-10-09 20:30:13 / 조회수 : 115
제목 세 사람의 최 씨 처녀/ 황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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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세 사람의 최 씨 처녀/ 황재영

- 내 젊은 날의 초상화 -


 

Mi amas vin ( 당신을 사랑해요) 이란 세계 만국어인 에스페란토로 영어로는 I love you다. 내가 결혼 전 육군사관후보생 때부터 우연히 최 ○ ○와 펜팔을 하게 되었다. 편지의 첫 줄은 언제나 Mi amas vin 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반세기가 넘은 지난날. 그때 그녀가 에스페란토를 알 리는 없다고 믿기기 때문이다.


내가 그 최 씨 처녀와의 펜팔 이야기를 20여 년 전 원로 방이란 실버 커뮤니티의 노변정담 게시판에 올렸다. 글을 읽은 대구 원로방 김대수 회장께서 일본어로 번역하여 ‘멜로우 소사이어티’ 라는 일본 원로방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때 누군가가 왜 펜팔 하던 최 씨 처녀를 두고 갑자기 결혼해 버렸느냐고 물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아버지가 명하신 대로 장가를 들어야만 했고, 내 집안 분위기가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만한 사정이 되지 못하였다.


50여 년 전인 1965년 1월인가 엄청 추운 겨울이었다. 내가 소속된 보병 제28사단은 최전방인 임진강 휴전선에서 경기도 양평에 주둔하던 보병 제9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여 양평으로 부대를 이동한 후, 여주 남한강에서 FTX(야전 기동훈련)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26살 나이의 보병 중위였고, 연대 군수장교로 골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대장 지휘소 천막으로 불려갔다. 대구에 계시는 아버지가 나의 혼사가 결정되었으니 급히 집으로 보내 달라는 관보를 친 것이다. 결혼 날짜 불과 4일 전이었다.


훈련 중이라 내가 갈 수 없다고 했더니 연대장님께서 내가 맡은 임무는 다른 장교에게 위임할 것이니 바로 출발하라는 것이다. 나는 중앙선 열차로 대구로 내려갔다. 복장은 입은 전투복 그대로였고, 모자는 위장 철모 대신 작업모로 바꿔 썼다.


그때 나는 신부는커녕 결혼식장이 어딘지도 몰랐다. 대구 본가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안 계시고 마침 출가한 누님이 와 있기에 결혼식장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누님은 대답 대신 지금 바로 고향인 포항(등명리)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거기 가면 부모님도 미리 가 계시고 혼사 준비는 다 해 두었다. 그럼 예식장은? 예식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신붓집인 경주 내남이란 동네로 가서 초례를 올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 어제 네 처가 될 처녀가 잠시 왔다 갔다. 이름이 최 ○ ○ 라고 하더라. 요새 신식 처녀라서 그런지 혼인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궁금해서 왔겠지~ 내가 결혼식 날짜가 내일이니 조금만 기다리면 네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그만 아무런 말 없이 처녀가 떠나 버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척 놀랐다. 직감적으로 펜팔 하던 그녀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펜팔은 하면서 결혼하자는 말은 서로가 전혀 약속한 일은 없었지만 그 처녀가 얼마나 실망했을까? 나는 죄책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집을 나와 고향으로 갔다. 고향 큰집 종가 사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나를 반겼다.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 목욕부터 다녀오라고 한다.


이튿날 나는 처음으로 새로 지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도포에 갓까지 쓰고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동네 앞에 나와 경주행 버스에 오르니 복장이 거추장스럽다. 아버지! 제가 갓을 벗어들고 가면 안 될까요? 아버지는 그러라고 하셨다.


근 한 시간이나 버스에서 시달리다가 경주역 앞에 도착하여 아버지가 미리 말해 두었다는 닥구시(TAXI)를 찾는 사이에 내가 추워서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다방 레지가 방글거리며 하는 말 ~ "오늘 신라 문화제 행사에 출연하는 길이냐?"고 묻었다. 아마도 헐렁한 도포에다가 갓까지 쓴 내 몰골이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 모양이다.


다방 구석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펜팔 친구인 최 ○ ○ 외에 사실 나는 또 다른 최 씨 처녀가 생각났다. 우리 연대가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란 곳으로 이동해 온 직후에 어느 날 일어난 일이다. 대대장 부인이 부대 안에서 기거하고 있는 나에게 저녁에 자기 집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무슨 아이 돌잔치라도 있는가 하고는 찾아갔더니 넓은 안마당에 포장까지 치고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그 집은 대대장 부부가 세 들어 사는 집이었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나는 대대장 사모님과 동네 사람들의 칭찬에 말려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놀았다. 그날 저녁 일은 대대장 사모님과 집주인이 사전에 준비한 각본에 말려든 것임을 그 이튿날에야 알아차렸다.


그 잔치는 대대장댁에서 준비한 것이 아니고 집주인 마나님이 자기 사위를 고르려고 서로 짜고 나를 불러간 모양이다. 잔치가 있던 다음날 부대에 있는데 지금 바로 양평읍에 있는 모 다방으로 나가서 최 씨 처녀를 만나 보라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여 거절하였으나 사모님은 막무가내다.


사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나가기는 했으나 그녀를 만나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만약 만났다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는데 후일 처녀를 책임지라고 한다면~ 나는 은근히 겁을 먹었다. 그 후 사모님에게 몹시 시달렸다.


처녀의 아버지가 읍장을 지낸 분이고 딸은 서울 수도여고를 나왔고 그의 오빠는 대위로 미8군 통역장교로 있단다. 내가 한 번이라도 처녀를 만나 보기만 하면 당장 반해 버릴 것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계속 독촉이다. 그러면서 잔치 날 저녁에 그 집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고 특히 처녀가 나한테 마음이 있다고 했단다. 그러나 난 그 후에도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달포쯤 지난 어느 날 소식도 없이 대구에서 어머니가 나를 찾아오셨다. 얘야~ 내가 오늘 처녀 선보고 왔다. 대대장 부인을 따라서 최 씨 집에서 점심도 대접받고 처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 처녀를 너와 짝을 지우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이라도 그 처녀를 한번만나 보라고 하신다.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내가 입대 후 단 한 번 면회조차 온 일이 없는 어머니가 이곳까지 찾아오시다니 난 할 말을 잃었다. 당일로 나는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어머니! 난 아직 장가를 들고 싶지 않아요! 언제든지 가고 싶으면 그때 가서 내가 처녀를 고르면 됩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리시면서 꼭 그 처녀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 보라고 당부하시며 기차에 오르셨다.


그러나 그 양평의 최 씨 처녀는 그 후에도 만나지 않았고, 펜팔을 하던 최 씨 처녀도 아닌 지금의 경주최씨 처녀와 결혼하여 삼 남매를 두고 네 아이의 외조부와 한 아이의 친조부가 되었다. 아마도 나는 최씨 성을 가진 세 사람의 처녀 가운데 지금의 경주최씨 처녀와 결혼하도록 이미 전생에서부터 정해진 인연이 아닌가 싶다.



약력

경주 출생.

2016년 (문예사조) 수필로 등단.

한국전쟁문학회 자문위원. 청향문학상 운영위원. 저서 625 전쟁피난체험기. 육군 중령 예편. 국가유공자(무공포장. 삼일보국훈장. 화랑 무공헌장, 인헌무공훈장. 월남금성무공훈장), 실버넷뉴스 편집국 부국장.



황재영 기자 문화예술관 운영위원 hjy27@silvernet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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