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최경자 / 등록일시 : 2019-12-11 17:10:21 / 조회수 : 36
제목 이천 원의 행복/김자인(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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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이천 원의 행복

                                               김자인(김인자)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인연이 있다. 운이 좋으면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오고 가는 길목에서 약속 없이 만날 때는 봄이 중간쯤에 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풋풋한 봄 향기를 품고 오는 이는 봄을 한 아름 안겨주고 떠나버린다.

    

여인은 해마다 동네 놀이터 앞에서 풋나물을 팔고 있으니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서울에서 구경하기 힘든 나물이다 보니 대부분의 가정주부는 지갑을 열게 된다. 나물이 연하고 보약 먹는 기분도 있어 나도 보기만 하면 사곤 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어 나물이 젖고 있으니 을씨년스러웠다. 깔아놓은 보자기에 연둣빛 새순이 넘실거려 새벽에 채취했다는 말에 믿음이 갔다.

    

가시오가피 순, 머위 잎, 원추리 등 여러 가지가 섞여진 산나물을 샀다. 우리 식구가 먹기에는 많은 양으로 푸짐했다. 안 그래도 아침방송에 봄나물이 비타민C와 칼슘, 단백질 합류량이 많으니 육류와 같이 섭취하면 좋다고 했다. 더불어 노인들은 고기와 나물을 적당히 먹어야 에너지가 향상된다고도 했으니 이만하면 입맛도 돋우고 에너지 보충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혼자 먹는 점심은 늘 대충대충 때우게 된다. 김치 하나만 꺼내거나 입에 맞는 음식 한둘을 놓게 되는데 그날은 마음먹고 사 온 나물을 소금물에 살짝 데쳤다. 혼자라도 봄의 성찬을 맛볼 요량이었다. 얼른 데쳐낸 나물이 여리디여리다. 고추장과 된장에 따로따로 무치고, 또 하나는 된장, 고추장을 섞어 갖은 양념에 무쳤다. 입안에 군침이 돌아 먹어보니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사람마다 그 나름의 맛이 있듯이 나물도 각각의 맛과 향, 특색이 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오가피는 나무에 가시가 있지만 순은 의외로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날은 나물 반찬 몇 가지에 김치, 꽁치조림, 김까지 곁들였으니 혼자서 점심을 거하게 차려 먹은 셈이었다. 나물을 먹다 보니 맛이 있어서  더 사 오고 싶었다. 다 팔리기 전에 가려고 창밖을 보니 그때까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순간, 파라솔 아래서 나물을 팔고 있을 여인이 추울 것 같아 따끈한 차 한 잔을 건네주고 싶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요즘 커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멀리서 온 커피를 연하게 타 보온병에 담았다. 식탁 위에 있는 빵과 초콜릿, 사탕 몇 알, 견과류 등 주전부리로 먹는 간식 몇 가지를 준비하고 조금 전에 나물 담아준 비닐봉지도 챙겼다. 혹시 다 팔고 갔으면 어쩌나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멀리서 보니 나물이 그대로 비를 맞고 있어 안심되었으나 그 많은 양을 언제 팔고 갈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나는 바투 앉아 봉지를 내밀며 점심때 나물을 먹어보니 맛있어서 더 사러 왔으니 조금 전 그만큼의 양을 달라고 했다. 모자를 눌러쓴 여인이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또 오셨으니 서비스라며 달래 한 줌을 덤으로 얹어 주었다. 뜻밖의 호의에 흐뭇해진 나는 고맙다고 했다.

    

나물을 다 샀으니 준비해 간 커피와 과자, 견과류를 건넸다. 미리 내밀면 거래에 영향을 끼칠까 봐 그때 내민 것이었다. 커피를 조금 마셔본 여인이 연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위가 가셔졌다는 눈빛이었다. 걸음을 옮기다 말고 점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물었다. “ 아침을 늦게 먹어서 괜찮아요.” 한다. 그때가 오후 2시 정도인데 점심을 먹지 않았다니 난전을  비울 수가 없어 그랬겠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물 파는 여인이 배고플 거란 생각이 자꾸만 스친다. 마침 김밥집이 있어 들어갔다. “김밥 한 줄만 주세요.” 해놓고는 두 줄은 사야 하는 게 아닌가. 망설임이 컸다. ‘아니야, 두 줄을 주면 받는 쪽에서 부담스러울 거야, 한 줄은 그래도 부담이 없지한 줄만 먹어도 요기는 되니까 괜찮겠지하는 생각에 2,000원을 주고 김밥 한 줄을 샀다. 다시 나물 파는 곳으로 가서 배고프실 텐데 이거 드세요.” 얼떨결에 김밥을 받아든 여인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어머, 웬일이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한다.

    

한참 걸어오는데 등 뒤에서 아줌마, 아줌마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못 들은 척하고 오다가 자꾸만 부르기에 뒤돌아보니 그쪽으로 와 달라고 손짓을 한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다시 골목 어귀를 돌아 거의 집 앞까지 다 왔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뛰어왔는지  휴, 숨을 몰아쉬며 내 손을 잡고는 저 지고는 못 살아요.” 하며 웃는 게 아닌가내미는 봉지에는 새 순이 그득했다. 옥신각신 하다가 거기까지 달려온 그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이미 내 손에 들려있는 나물은 2,000원의 가치보다 더 많은 나물이 들어 있었고, 따뜻한 온도의 삶을 느껴보고 싶었던 조금 전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급하게 담은 봉지 안의 연둣빛 청정함이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울컥하며 모자를 눌러쓴 여인의 얼굴이 실루엣으로 포개어진다. 스쳐지나가는 작은 인연인데 내년에 찾아올 봄, 또 그다음의 봄을 기다려야겠다.

    

    

    

 약력

김자인(본명 김인자)  1996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편집주간 역임. 동대문문인협회 편집위원문학의집 서울회원.

수상 : 36회 한국수필문학상, 1회 독서문학상 수상. 수필집 그땐 정말 미안했어 》  《꿈꾸는 작은 새

이메일 : appleinja@hanmail.net

    

    

김인자 기자 문화예술관 운영위원 appleinja@silverne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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