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임선 / 등록일시 : 2019-12-12 16:45:25 / 조회수 : 62
제목 자식과 아버지 /윤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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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아버지 /윤행원

전철에서 술이 거나한 두 아버지 옆자리에 앉았다. 한 아버지가 말을 한다. 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아들놈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지.


"이제 너는 대학을 졸업했으니 너 혼자 힘으로 살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너를 대학까지 시키려고 무진 힘을 썼지만 오늘로써 너와 나 사이 채무 관계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자. 네가 갚을 일도 없고, 내가 받을 것도 없다는 말이다.

 

이제부턴 갚을 생각도 하지 말고, 도움받을 생각도 하지 마라. 나도 너한테 노후를 의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부터는 아버지도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야겠다. 별로 모아 논 돈도 없지만 어떻게 하든 네 엄마와 아버지의 생활비는 마련할 테고 오늘부터는 제2의 인생으로 우리 둘 만을 위해서 살겠다.“


아들에게 그렇게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가슴 속엔 피눈물이 내리는 표정을 짓는다.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 육순으로 들어선 얼굴에 삶에 찌든 피곤이 노곤하다. 있는 힘 다하여 자식들 공부시키고 나니 어느덧 예순으로 훌쩍 들어서고 앞에서 버티고 있는 늙은 생활이 허탈한 모양이다. 아들 대학을 졸업시키면 좋은 데 취직을 해서 아버지 용돈이라도 기대를 했건만 벌써 두 해째 집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참다못해 어제는 아들에게 결별 같은 선언을 했다고 한숨을 푹푹 쉰다. 옆에 있는 친구는 동병상련의 모습으로 고개만 꺼덕거리다가 조용히 위로하듯이 말을 한다.


“그래 잘했다. 대학 나오면 제가 벌어서 결혼하고 집 사고 스스로 꾸려나갈 나이가 되고도 남았다. 우리 한국 어버이들은 자식들에게 너무 잘해 주려는 것이 탈이야. 결국 의타심만 키우고 어중간한 자식으로 만들었단 말이야. 이제 우리 아버지도 자식에게 매여 살지 않아야 한다.


어미는 좀 더 보태주고 싶겠지만 자식 키우느라 노후준비도 제대로 못 한 불쌍한 아버지 생각도 해야 하는데…. 가슴이 아프다. 이제 나이도 환갑이 훨씬 넘었으니 앞으로의 생활도 큰 걱정이다. 당신이나 나나…. 흐흐흐….” 하고 친구의 손을 잡으며 쓸쓸하게 웃는다.


그래, 대한민국 아버지는 고달프다. 마누라와 자식들 사이에서 외롭고 슬프다. 아버지의 수고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가족을 만나면 다행한 일이지만.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것도 그런 대접을 못 받는 게 우리나라 늙은 아버지의 신세다. 오죽하면 이사할 때 얼른 강아지를 안고서 운전사 옆에 미리 앉아 있으라는 우스개가 나올까.


있는 재능 없는 지혜 다 모아 혼신의 힘으로 가족을 위해 일생을 일하고 땀을 흘렸건만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위로의 말을 하는 가족이 아쉽다. 밀림을 호령하던 수놈 호랑이도 늙어 힘이 떨어지면 젊은 놈에게 쫓겨나고 황야를 헤매다가 혼자서 죽는다고 한다. 강하고 모질게 살았든 수컷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혼신의 힘으로 가족을 위해 살았든 일생, 온갖 지혜 모아 보람과 정열과 기쁨으로 사나이의 강인한 의무를 불살랐던 아버지여! 그러나 아버지는 외롭다아버지는 위로를 받고 싶다. 아버지는 존경을 받고 싶다. 아버지는 가족 앞에 눈물을 감춘다.


죽을힘을 다해 자식들을 키워내고 온갖 치욕 겪으며 가족을 보살펴도 서투른 자식들은 아버지의 고생은 당연지사로 여긴다.


못난 놈은 엉덩이에 뿔 난 자식이다. 철부지 막무가내 자식 놈은 제멋대로 투덜대고 아버지의 속은 헐어 개천의 흙물이 되어 흐른다. 전철 노인석 옆에 쓸쓸한 얼굴로 엉거주춤 앉아 있는 그 사람은 축 늘어진 친구의 어깨를 한참이나 두드리고 있었다. 


윤행원:

수필가/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수필작가회 운영위원장(역임)
합천신문 논설위원



윤행원 기자 문화예술관 운영위원 harvardy@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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