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최경자 / 등록일시 : 2021-01-04 17:50:47 / 조회수 : 115
제목 불씨/최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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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불씨/최복희

                      

          

코로나19는 인간의 재앙이며 위협적인 존재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재산을 거덜 내고 사회 질서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감염을 피하려고 스스로 창살 없는 영어의 신세가 되다 보니 심신의 불협화음이 생겼는지 온몸이 쑤시며 아프다. 운동 부족으로 오는 현상이 아닌가

    

매일 운동을 하기로 작정하고 냇가 산책길을 걷고 막 들어왔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일까. 서로의 감염을 피하려고 자식들도 미리 연락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데 의아했다.

    

현관문을 빠끔히 열고 내다본다. 201호의 세입자인 소희 엄마가 다섯 살 딸에게 꽃다발을 들려 앞세우고 서 있지 않은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스크를 쓴 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꼬마는 고사리손으로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게 내민다. 얼떨결에 받아들고 어서 들어오라며 반기니 그녀는 사회적 거리를 의식해 아이 손을 잡고 손사래를 치며 돌아선다.

    

코로나19는 날이 갈수록 전 세계를 강타해 전쟁을 방불케 했다. WHO에서는 펜더믹을 발표했다. 방역 당국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발표하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의료인들과 봉사자들은 환자를 위한 일에 뛰어들고 식당 주인들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지경인데도 봉사자들을 위해 매일 도시락을 나른다는 소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진다.

    

또 건물 임대인들은 세 들어 사는 소상공인들에게 월세를 내려주거나 일정 기간 받지 않기로 한다는 등 소소한 미담도 들려온다. 하루하루 무료하고 숨 막히는 생활을 하던 나도 내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소희네는 우리가 다가구주택을 새로 지은 후, 첫 번째 들어온 세입자이다. 그네가 입주할 때 2년 살기로 계약을 했는데 만기를 넘기고도 1년을 더 살고 있다. 처음엔 월세를 밀리지 않고 잘 내더니 코로나19의 위기로 가정경제가 여의치 못한가 보다.

    

근래에 와서 월세는 물론 급전까지 빌려 가놓곤 갚지를 못한다. 내 사정을 아는 이들은 월세를 못 내고 만기를 넘긴 세입자에겐 방을 비우라고 해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형편을 뻔히 알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어 말없이 기다려준 게 고마웠나 보다.

    

소희 엄마는 이런 처지에서 스스로 이주하겠다고 며칠 전에 전화로 알려 왔다. 안타까움에 만감이 교차한다. 처음 만났을 때, 엄마 등에 업혀있던 소희가 어느새 의젓한 유치원생이 되었다.

    

어느 날, 소희 엄마는 어린이집에 함께 다니는 딸애 친구 세 명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내가 미처 가꾸지 못한 손바닥만 한 화단을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꽃모종 체험을 하게 해, 나를 감동케 했다.

    

또 공예품인 예쁜 조화를 엘리베이터 안에 장식해 놓아 매일 승강기로 오르내리는 한 지붕 다섯 가족을 즐겁게 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작은 선물을 나누며 가족처럼 지내지 않았나.

    

다행인 것은 이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불씨를 잘 살려서 좀 더 넓은 임대아파트로 이주한다니 축하할 일이다. 그녀가 준 감사의 꽃다발로 거실이 한껏 환해져 기쁘다.

 

우리는 신혼 시절 산자락 외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40년 이상을 전원주택에서 살다가 개발 바람이 불어와 새살림을 시작했다. 그동안 자업자득하며 마음 편히 살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월세를 받아 살아야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남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사는 셈이 아닌가. 우리 집에 입주한 사람들은 젊은 부부와 부모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청년들이다. 그들은 모두 넉넉지 못한 자본으로 우리 집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고 산다. 하나같이 성실하고 마음씨 고운 한 울타리 가족이다.

302호에 사는 청년은 자동차 부품 수출 사업을 하는 형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형이 사업차 중국을 거쳐서 몽골로 갔다가 코로나19가 번지는 바람에 귀국길이 막혀 사업을 중단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그는 젊음의 혈기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삶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세입자들의 어려움은 내 삶에도 위축을 준다. 하지만 나도 젊었을 때 가시밭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어 외면하지 못하고 그 청년에게 형이 귀국해 사업을 시작할 때까지 편리를 봐주겠노라고 했다.

    

그는 내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다음 날, 밝은 표정으로 과일 한 상자를 들고 와 현관 앞에 내려놓곤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며 열심히 살겠노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들에게 작은 성의를 보였을 뿐인데 큰 기쁨으로 되돌아와 안겼다.

    

나는 대대적인 도움은 주지 못해도 우리 집에서 삶의 불씨를 지피는 이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보태주리라. 부족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사는 젊은이들이 대견스럽다. 그들도 큰 꿈을 펼쳐가노라면 언젠가는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며 기쁨을 맛볼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약력

1997년 한국수필로 등단/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문학의 집·서울 회원/한국수필가협회 이사/한국수필작가회 부회장/실버넷뉴스 기자(앵커)/ 36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저서: 새들이 찾아오는 집, 푸르던 그해 겨울,

    

    

최복희 기자 문화예술관 운영위원 bokhee48@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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